동의보감·수운잡방 등 18종의 고문헌에 양조방법 수록
20% 식물재료 규정에 막혀 상업양조 할 수 없는 상황

술을 담은 도자기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상감청자로 주병에는 포도송이와 동자가 그려져 있다. 술병에 포도가 그려져 있다면 이 병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식명칭는 ‘청자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주자’(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술을 담은 도자기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상감청자로 주병에는 포도송이와 동자가 그려져 있다. 술병에 포도가 그려져 있다면 이 병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식명칭는 ‘청자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주자’(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수운잡방, 동의보감, 지봉유설, 온주법, 유원총보. 이 이름들은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조리서나 의학책이다. 이 책에는 그 당시 빚어지던 다양한 형태의 우리 술들이 등장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여러 술이 복원돼 상업양조에 나서는 술도가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문헌에 갇혀 박제화된 이미지를 벗지 못한 술들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우리 술의 지평은 넓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책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술의 주제이기도 하다. 총 18종의 고서에 등장하는 그 술의 이름은 포도주. 서양 와인에 익숙한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포도주가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포도로 빚은 술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주 중 하나다. 포도는 곡물보다 더 쉽게 알코올 분해되는 단당 구조로 이뤄져 그 자체로 훌륭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우리 고문헌에 등장하는 포도주를 담는 방식만 20여가지가 넘는데 그중에는 서양처럼 포도의 즙으로만 술을 빚는 법도 있으며, 대개는 막걸리를 담으면서 포도를 부재료로 넣는 방식으로 기록돼 있다. 예컨대 <동의보감>에는 익은 포도를 비벼서 낸 즙에 찹쌀밥과 누룩을 섞어 빚는 것으로 쓰여 있으며, 안동의 선비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는 포도를 짓이겨 찹쌀 다섯 되를 죽을 쒀 독에 담아 맑아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기록돼 있다.

고문헌에 나오는 포도주는 쌀과 포도를 같이 넣어 발효시킨 음료이다. 사진은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삼해소주’ 공방에서 시음용으로 빚은 포도주다. 주세법 문제로 시판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진 : 삼해소주공방)
고문헌에 나오는 포도주는 쌀과 포도를 같이 넣어 발효시킨 음료이다. 사진은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삼해소주’ 공방에서 시음용으로 빚은 포도주다. 주세법 문제로 시판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사진 : 삼해소주공방)

즉 우리 술의 근간인 쌀과 누룩에 포도를 부재료로 넣어 붉은 포도주를 얻은 것이다. 이 술의 맑은 청주는 서양의 와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빛깔을 띠고 있으며 탁한 부분은 붉은 막걸리와 같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빚은 포도주가 조선시대의 고문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 중 술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유적 중 하나는 중국 허난성의 자후 유적지다. 기원전 7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유적에선 도기와 피리, 단립종 쌀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기 파편도 포함돼 있었다. 이 유적에서 포도와 쌀, 꿀 등의 자취를 찾아낸 것이다.

이에 따라 쌀문화권에선 신석기혁명 때부터 쌀 등의 곡물과 포도 등의 과일을 같이 넣고 발효음료를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술의 세계사>의 저자인 패트릭 맥거번은 자후 유적을 발굴하면서 도기 파편에 있는 화학성분등을 분석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5년경 미국의 한 양조장에서 9000년 전의 술을 재현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포도 관련 발효음료의 역사는 서양에선 포도만으로 발효시킨 와인으로 성장했으며 동양에선 곡물과 포도를 함께 넣어 발효시킨 술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조선시대의 고문헌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주는 아직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주류 관련 세금이 주종별로 정해져 있어서 고문헌에 나와 있는 방식대로 술을 빚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곡주를 담으면서 쌀 무게의 20% 정도까지 과일 등의 여타 식물성 재료를 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빚어서 제대로 된 포도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쌀과 포도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과실주로도 빚을 수 없게 돼 있다 보니 고문헌에 나오는 포도주는 더는 빛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컨버전스의 시대에 꽉 막힌 제도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정부가 국내산 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 고문헌의 주방문을 되살려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전근대적이기까지 하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포도주가 상업양조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응답하라우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