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위원장 2020 메시지, 혁신기업 지원 및 포용금융론 강조
수렵사회의 타자 배려, 이기적 태도에 대한 사회적 처벌 반작용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 제공=금융위원회)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 제공=금융위원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먼길을 나선 당신에게 지금 ‘한 끼’의 음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길을 걷다 허기에 지친 나그네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이 당신에게 음식을 요청한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가던 길을 다 가지도 목표한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한 상황이다. 이타와 이기, 실리와 당위 간을 오가며 당신은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익명에 관대하지 않다. 익명은 관계성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다보니 무시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타자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데 인색하다.

그런데 수렵채집인의 삶은 다르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은 마지막 식량을 내놓는다고 한다. 같은 상황에 자신이 처할 가능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렵채집경제의 근간은 물자의 공유에서 출발한다. 특히 영양분이 많은 고기의 분배에선 분명한 원칙이 해당집단을 지배한다. 사냥에 나선 사람들은 물론 대체로 집단 내부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비참여 구성원에게도 고기를 분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공유는 이타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유감스럽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공유의식이 만들어졌다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즉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면 이에 대해 집단 내부에서 소리없는 아우성같은 사회적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분배에 나선다는 뜻이다.

이러한 행동은 문화적 훈련으로 집단에게 무의식처럼 새겨지게 되고 그 결과가 앞서 말한 수렵인들의 문화 준칙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종교적 선행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자주 등장한다.

유목민이나 농경민들의 나그네에 대해 갖는 태도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에 대해 환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암묵적 준칙이 초기 기독교와 이슬람 사회의 질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음식을 나누는 행위의 이면에는 그 나그네를 신의 현현으로 읽으려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누구나 다 그런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래의 편익을 위해서 현재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행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와 집단의식이 돼 그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단을 이끌면서 집단 구성원 모두를 강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20년 신년사에서 혁신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지원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주에는 포용금융론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권의 정책적 배려를 요청하기도 했다. 실물경제가 나아가려는데 금융이 뒷전에 물러서 있으면 안되고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은 위원장은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그것도 혁신하려는 중소기업 및 벤처 기업을 지원하는데 금융회사들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조스의 말까지 인용한다.

실패와 혁신이 쌍둥이라는 베조스의 말에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내포돼 있다. 은 위원장의 혁신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지원도 같은 관점에서 관용적 태도가 필요한 일이다.

혁신을 하다 실패한 기업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DNA가 사회 내부에 만들어져 있어야 은행 및 금융회사들도 기꺼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기관의 시선은 혁신에 관대한 금융회사에 대한 당근에 모아져야 한다.

원하는 기준을 만들어서 못미칠 경우 채찍을 들이대기는 쉬어도 기준에 따라 움직이도록 유인하는 당근을 만들기는 어렵다.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금융권의 배려는 금융위원장의 말 한마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채찍도 중요하지만 당근이 더 절실한 영역이다. 감독기관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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