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 23:10 (목)
인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인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2.1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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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조언처럼 기존 잣대로 현 상황 재단하지 않아
2020년 또한 오늘의 시선으로 현안 대응하며 살아갈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헛된 망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에 기대를 거는 어리석음을 비유할 때 흔히 인용하는 사자성어 중에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말이 있다. 나무 그루터기를 지켜보면서 토끼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 문장의 출처는 <한비자>의 〈오두〉편. 오두(五蠹)는 다섯 가지 좀벌레라는 뜻으로, 이들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거나 망치는 일들을 비유했다. 물론 한비자는 오두의 사례를 들어 파국을 막고자 했으며 하나의 사례가 ‘수주대토’였다.

한비자는 수주대토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선사시대부터 인용한다. 수상(樹上)생활을 하고 있던 상고시대 각종 짐승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둥지를 만든 유소씨(有巢氏)와 날것을 먹던 초기 인류의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켰던 수인씨(燧人氏), 홍수가 빈발했던 중고시대에 보를 쌓고 도랑을 파서 물길을 돌렸던 곤과 우 부자 등의 성인을 설명한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면서 성인이 되었고 통치자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런데 상고시대의 유소씨나 수인씨의 성공사례를 대홍수 시대에 적용할 수 없듯이 홍수를 막아냈던 곤과 우의 경험을 역사시대에 대입시킬 수 없다는 것이 한비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러한 대응은 주변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므로 성인이 되고자 한다면 옛일을 본받으려 하지 말고, 통시대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해결책으로 내놓지 말라고 지적한다. 당대의 문제는 당대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적절한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가 생각하는 리더가 취할 태도였다.

그러면서 한비자는 그 글의 결론으로 “지금 옛 임금들의 정치로서 현대의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것은 모두가 그루터기를 지키는 사람과 같은 무리가 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거의 성공 경험에 연연하지 않고 당대의 시선으로 현안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근삿값과 같은 대목을 고고학자 로버트 L. 켈리의 신작 <제5의 기원>에서 얻을 수있다.

와이오밍 대학교의 인류학교 교수인 그는 이 책에서 수상생활을 하던 호미닌(호모속)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생존을 위해 기술과 문화를 일궈내고, 이를 통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으며, 이윽고 농경과 국가라는 삶의 방식과 제도를 만들어내면서 가장 강력한 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제5의 기원을 앞두고 있으며, 앞서 말한 기원들이 그랬듯이 인구압력을 느낀 인류가 매번 탁월한 선택을 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런데 도구와 불의 사용을 통한 기술의 기원이나, 매장의식을 통한 문화의 기원이든, 호미닌 내지 초기 인류가 선택한 행동은 맞닥뜨린 현실에 대해 각각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나무를 타던 영장류가 그들의 의지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면서 사냥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또한, 이족보행도 그들의 자발적 선택의 과정은 아니었다. 영혼이나 내세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상징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범신 혹은 조상신을 만나려 했던 것도 의도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가 농경을 선택했던 것도, 또 농경민들이 통치를 위한 엘리트를 분류해내고 국가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도 특정 의지가 발현된 결과는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당시에 맞닥뜨린 현실에 충실했을 뿐이다. 인구압력을 느꼈던 호미닌들이 나무에서 내왔던 것은 기후변화에 따라 삶의 터전이었던 숲이 줄어든 결과였으며, 사냥을 잘하기 위해서 도구를 만들고 이족보행을 하게 됐으며, 불을 발견하면서 화식을 하게 됐고, 그 결과 뇌는 더 커질 수 있었으며 결국, 그 과정을 거치면서 호미닌은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 농경을 선택한 것도 인구압력에 따른 수렵대체지가 없는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가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했다.

즉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인류는 누구도 ‘수주대토’하지 않았다. 매 순간 그들은 최고의 사냥꾼이나 농경부족장, 그리고 국가의 통치자가 되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을 슬기롭게 치르면서 최고의 인류가 되고자 할 뿐이다. 그 결과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2020년 또한 우리는 모두 그런 한 해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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