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금융계열 부동산신탁사들이 본격적인 경쟁 리그에 뛰어들며 대한민국 부동산신탁 시장이 또 다시 꿈틀대고 있다. 지난해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의 신탁사 인수가 마무리되며 국내 4대 금융지주 모두 부동산 신탁사를 품에 안게 됐으며, 오랜 기간 11개 신탁사가 과점 형태로 주도했던 시장에 증권사를 주축으로 한 신탁사 3곳이 새롭게 진출하게 됐다.

그동안 부동산신탁업계는 부족한 자본력과 보수적인 사업행보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질적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 탄탄한 자본과 공격적인 영업인력으로 무장한 금융계열 부동산 신탁사들은 신탁업의 혁신과 변화를 원하는 당국의 강한 의지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금융신문은 2020년 신탁업의 새로운 문을 열게 될 금융계열 부동산신탁회사들을 차례로 만나 이들의 포부와 사업계획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1) 하나자산신탁 “정비사업, 진검승부는 이제 시작이다”

[인터뷰: 하나자산신탁 최용길 경영지원본부장]

2017년 부동산 신탁시장은 정점을 찍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체됐던 신탁시장은 이후 빠르게 회복하며 2017년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8, 2019년 연이은 하락세에 이어 올해도 부동산시장 규제강화와 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라 시장축소는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나자산신탁은 신탁시장이 흔들리던 지난 2~3년간 시장의 니즈를 반영한 책임준공형(건설사를 대신해 현장을 책임지고 관리) 상품을 새롭게 발굴하며 관련 시장에 역량을 집중했다. 놀라운 성장세로 결국 2019년 영업이익률 업계 1위를 차지하며 부동산신탁업계 탑3로 올라섰다. 시장을 새롭게 재편하며 성공을 맛보았던 이들은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함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하나자산신탁 본사건물
하나자산신탁 본사건물

-최근 서울 랜드마크도 아닌 지방 정비사업(청주 사직 1구역 재개발사업)에 하나자산신탁과 한국토지신탁, 대형 신탁사 두 곳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입찰에 나서며 화제가 됐다. 앞으로 부동산신탁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행보라 생각된다.

새로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신탁시장은 서로 뺏고 뺏기는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지금 신탁사들이 제일 고민하는 이슈는 새로운 먹거리, 사업영역 확대다. 우리는 그 답을 ‘정비사업’에서 찾았다.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시공사(건설사)들의 전유물로 생각됐다. 하지만 2016년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며 신탁사들이 주도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처음에는 서울 여의도나 압구정 등 대규모 정비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이 되기도 했지만 여러 이슈 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며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작년부터 내실을 다지는 차원에서 신탁사들이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정비사업 위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조합에서도 초기에는 신탁사들에게 사업 대행 수수료를 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점차 이해도나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신탁사에게 사업을 맡기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의 신뢰가 높아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

조합원들도 처음에는 신탁사에게 사업비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신탁방식의 정비사업을 통해 전체 사업비를 절감하고 사업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건설사들이 주도하는 정비사업이다 보니 시공단가가 상승하는 만큼 사업비가 늘어나고 조합의 부담금도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하지만 신탁사들은 전체 사업비나 공사비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받아 그 안에서 시공사를 선정하고, 시공사도 제대로 된 견적을 가지고 경쟁입찰에 참여한다. 신탁사가 시행이익을 나눠 갖지 않기 때문에 적정한 기준에서 시공사 및 시공비를 선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체 사업비가 절감되고 당연히 조합원 입장에서도 부담금이 줄어든다.

이제 신탁사가 주도적으로 착공해 분양하는 사업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물건들이 청산까지 제대로 이뤄져 시장의 신뢰도가 형성된다면 앞으로 신탁사들이 참여하는 정비사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나자산신탁은 신탁시장이 하락세를 보일 때 책임준공형 상품을 발굴해 시장을 선점하며 큰 성장을 보였다. 책임준공형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 보는가.

책임준공형 시장은 레드오션이 되어 가고 있는 시장이다. 더구나 올해 3개 신규회사까지 진입하며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당연히 수수료 인하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2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자산신탁과 KB부동산신탁이 각각 책임준공형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지만 작년부터 중하위원 신탁사들도 책임준공형 사업을 많이 가져갔다.

우리는 책임준공형 사업뿐만 아닌 차입형(도시정비개발사업)에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물론 시장에서 우량한 물건을 발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쪽에 역량을 집중해 진검승부를 벌일 것이다. 우선 올해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정비사업 위주로 참여해 시장 인지도나 브랜드파워를 확보하고, 내부적인 프로세스나 사업관리 노하우를 갖춰 향후 수도권 내 랜드마크 딜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시장에서 우량한 딜을 발굴한다는 것은 사업을 스스로 만들어내겠다는 의미인가. 기존 신탁사들이 수동적으로 사업을 수주해오던 방식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기존 차입형에 주력하던 신탁사들은 시행사가 위탁자가 되서 물건을 가지고 오면 그중에 좋은 사업을 선별해 사업화를 해왔다. 또 책임준공이나 관리형 등 비차입형에 주력하는 신탁사들은 물건을 가져오던 증권사나 시공사의 영업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을 수주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 물건(딜)을 발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장이 됐다고 본다. 여기서 하나자산신탁이 다른 신탁사와 시각을 달리하고 있는 부분은 ‘숏텀(단기)’에서 ‘롱텀(장기)’으로의 수익구조 다변화다. 그 중심에 ‘임대형 사업’이 있다.

그동안 신탁사들은 단기 성과에 치중하다 보니 분양 위주의 사업에 집중해왔다. 신탁사들의 수입구조는 대부분 2~3년 숏텀으로 이뤄지는 분양사업의 수수료 수익으로 이뤄져 있다. 반면 임대형 사업은 신탁사가 기존 8~10년간 준공부터 임대∙운영관리 해주는 상품이다. 장기로 관리해야 하는 만큼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는 것에 비해 수수료 비중이 작아 외면받고 있었다.

임대사업은 준공단계에서는 개발과 관련된 수수료를, 준공 이후에는 실제 자산을 관리하는 운영관리 보수를 받게 된다. 이러한 임대사업이 단기로 보면 수익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지 않지만 관련 사업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향후 회사가 롱텀의 수익구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해 부동산 시장을 분석해주는 프롭테크(부동산 핀테크) 기업들이 많이 보인다. 새로운 딜을 발굴하는데 이들과의 협업도 구상하고 있나.

프롭테크 기업 중에 자사의 빅데이터나 알고리즘으로 임대주택 사업 시 운영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분석해주는 회사들이 있다. 역세권 지역의 토지정보 데이터를 끌고 와 임대주택으로 개발할만한 곳을 추출해내고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우리는 이런 기업들과 계속 교류하면서 함께 미팅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에는 토지주나 건물주가 사업진행을 위해 신탁사를 찾아왔다면 이제는 우리가 역으로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가지고 이들에게 먼저 사업화를 제안한다. 프롭테크 기업의 분석결과를 통해 예상 임대운영 수익을 알려주고 신탁사가 개발부터 자금조달, 준공, 운영관리까지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제안하며 시장의 딜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무한경쟁에 돌입한 부동산신탁시장에서 업계 탑3로 올라선 하나자산신탁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나자산신탁은 그동안 시장 변화에 잘 대응해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열심히 영업해서 뺏고 뺏기는 환경에선 성장을 가져오기 쉽지 않다. 새로운 상품,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야만 그 안에서 도약이 가능하다.

우리는 기존 신탁 비즈니스와 같이 정형화된 거래처를 열심히 영업해서 사업을 따오는 방식이 아닌,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숙원사업이나 우량 개발사업을 직접 제안해 시장을 발굴해나갈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하나금융그룹의 여러 관계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제안형 공모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그룹 차원에서 1000억원 규모의 에쿼티(Equity) 펀드를 조성해서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했다. 그룹차원에서 투자 재원을 마련했기 때문에 우량 딜이 발굴된다면 앞단에서 자금세팅을 통해 사업의 주도권을 끌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여기에 은행, 증권, 캐피탈, 자산운용사 등 하나금융 계열사들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하나자산신탁은 작년 말 정비사업 부문에서 총괄임원 교체와 외부전문인력을 보강하며 전면적인 인력재정비에 나섰다. 신탁업계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정비사업 쪽에서는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은 하나자산신탁이 새로운 도전으로 다시 한번 재도약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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