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 가문 집안 술로 500년 동안 내려온 술
경북 무형문화재 18호, 1991년 이후 일반에 선봬

경북 무형문화재 제18호로 등재돼 있는 호산춘. 장수 황씨의 가양주로 500년 정도 내려온 술이다. 사진은 호산춘 술도가 입구의 모습
경북 무형문화재 제18호로 등재돼 있는 호산춘. 장수 황씨의 가양주로 500년 정도 내려온 술이다. 사진은 호산춘 술도가 입구의 모습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을 담가 두어 달 발효와 숙성이 끝나면 항아리 위에는 맑은 술이 자리하고 아래쪽은 쌀의 섬유질 등 지게미 부분이 모이게 된다.

여기서 맑은 술을 뜨면 청주(주세법상 약주)가 되고, 지게미 부분에 물을 더해 알코올 성분을 취하면 탁주 혹은 막걸리가 된다. 이렇듯 우리 술, 청주와 막걸리는 한 몸에서 비롯된다.

전해 내려오는 우리 술 중 봄춘(春)자를 쓰는 술들이 제법 있다. 서울 약산에서 시작된 ‘약산춘’, 푸른 향기가 깃들었다고 ‘벽향춘’, 산사나무 열매를 썼다고 ‘산사춘’, 백 가지 꽃을 넣었다 해서 ‘백화춘’ 등 고조리서에는 우리 술의 옛 이름이 빼곡하다.

문경 산북면에도 집안의 가양주로 내려오는 술 하나가 있다. 이름은 ‘호산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장수 황씨 집안의 가양주다. 우리에게 황희 정승으로 유명한 장수 황씨의 사정공파 집안 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6호)이 산북면에 있고, 이 집안의 ‘봉제사접빈객’을 위한 술이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진 술이다.

호산춘의 상업양조는 사정공파 21대 종부인 권숙자 여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이며 2대째는 22대 종부인 송일지 여사에게 전수돼 현재는 전수조교인 황수상 대표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호산춘은 여러 조리서에 등장하는데 <산림경제>에는 3양주 방식의 제조법이, <양주방>에는 이양주 방식으로 정리돼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는 문경과 익산에서 같은 이름의 술이 존재한다.

익산의 호산춘은 항아리 호(壺)를 쓴다. 익산의 옛 이름이 호산(壺山)인데서 기원한 것이며 문경의 호산춘도 이름은 같았으나, 익산 호산춘과 구분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등재하면서 호수 호(湖)자를 사용했다.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문경 호산춘은 흔히 사용하는 누룩보다 두 배쯤 큰 누룩을 사용했다고 한다. 양조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누룩 틀만 보더라도 누룩의 크기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대째를 맡고 있는 황수상 대표가 발효실의 발효조를 바라보고 있다. 호산춘은 완전발효를 시켜 드라이한 맛과 곡물이 지닌 단맛을 내는 전통주다.
3대째를 맡고 있는 황수상 대표가 발효실의 발효조를 바라보고 있다. 호산춘은 완전발효를 시켜 드라이한 맛과 곡물이 지닌 단맛을 내는 전통주다.

현재는 기성 누룩을 사용하면서 원래의 맛을 내기 위해 호산춘 양조 과정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추가해서 발효시킨다고 한다. 현재 대표를 맡은 황수상 대표는 배상면주류연구소에 이어 식품미생물학을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했을 만큼 체계적인 미생물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이 술의 밑술은 멥쌀 백설기과 끓여 식힌 물, 그리고 누룩으로 빚으며 대략 2주 정도 발효시킨다고 한다. 덧술은 찹쌀과 분쇄한 솔잎을 함께 고두밥을 지어 밑술에 잘 비벼서 술을 만드는데, 대략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를 발효시킨다고 한다.

덧술 과정에서 솔잎을 넣는 것은 솔향을 입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려는 이유가 크다. 또한 주박(지게미)과 함께 필터 역할을 해주므로 맑은 술 채취에 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호산춘은 완전발효를 시켜 숙성시킨 만큼 술의 드라이한 맛과 감칠맛이 술의 줄기를 이루고 있고, 알코올 도수가 18도인 만큼 묵직한 맛도 지니고 있다. 또한 샴페인 잔을 사용할 경우 기존 약주 잔을 사용할 때와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해 다채로운 술맛을 즐길 수도 있다.

한편 황 대표는 지난 2018년 소주제조면허를 내고 호산춘을 증류한 소주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술의 이름은 ‘화경(畵景)’이며 3년을 숙성한 술을 낼 계획이다. 알코올 도수는 25도와 50도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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