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가평, 강원 홍천 특산물 활용한 막걸리 잇따라 출시
고려 때부터 보양으로 알려진 ‘백자주’ 20여 고문에 등장

코로나19의 여파로 양조장을 찾을 수 없어, 필자의 공방에서 잣을 부재료로 빚은 술을 비교시음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백자주, 가평잣 햅쌀1872, 잣진주, 청진주, 가평잣생막걸리 순이다. 잣의 함유량에 따라 잣의 향미는 다르지만, 모두 고소한 맛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술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양조장을 찾을 수 없어, 필자의 공방에서 잣을 부재료로 빚은 술을 비교시음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백자주, 가평잣 햅쌀1872, 잣진주, 청진주, 가평잣생막걸리 순이다. 잣의 함유량에 따라 잣의 향미는 다르지만, 모두 고소한 맛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술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식물은 술의 부재료가 되기 힘들다. 특히 발효주는 지방 함량이 높은 재료를 술의 부재료로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유는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의 주된 먹이는 당분이지 지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성 지방인 우유를 발효시킨 마유주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우유를 발효시킬 수 있는 균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지방 함량이 높은 잣을 술을 빚는 데 이용해왔다. 잣으로 술을 빚었다는 기록은 고려 때부터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잣술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력은 매우 길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의학에서 잣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근원적이고 응축된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잣은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해주는 보양식품으로 간주해 왔고, 이 같은 생각은 음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잣술과 관련해선 <고려사>에 명종이 허약해 보양과 원기를 돋우기 위해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와 함께 고문서 20여종에는 ‘백자주(柏子酒)’라는 이름의 잣술이 등장하는데, 잣이 가진 보양능력을 높이 샀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잣은 서양 잣과 비교하면 지방함유가 상대적으로 높다. 우리 잣이 78% 정도이며 미국 잣이 62%, 유럽 잣이 45% 정도이다. 감칠맛을 결정하는 글루타민산(흔히 MSG라고 부르는 물질)도 다시마의 3배, 김의 5배 정도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잣을 넣은 술이 더 고소한 까닭이며, 기름진 술의 질감이 단맛을 상승시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기름이 많은 까닭에 술의 제조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기름막이 발효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조리서에선 산패를 우려하는 기록들도 다수 남아 있다.

하지만 잣을 넣어 빚은 술의 맛은 훌륭하다. 잣 함유량에 따라 술맛이 크게 차이나지만, 잣 성분이 술의 고소한 맛을 끌어올리고 살짝 산미까지 느껴지게 해 맵고 짠 우리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잣이 많이 생산되는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홍천에선 잣을 넣은 술을 다수의 양조장에 생산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의 경우는 가평우리술에서 대중적인 잣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막걸리교육기관인 전통주연구개발원에선 프리미엄 잣술을 만들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선 산수양조장에서 지난해 프리미엄 잣맛걸리를 빚고 있으며, 예술양조장에선 잣을 넣은 이화주를 생산하고 있다.

잣을 부재료로 사용한 술 중 잣의 함량이 가장 높은 술은 가평에 있는 전통주연구개발원에서 빚은 잣진주이다. 잣을 많이 넣은 만큼 잣의 기름 성분이 술에도 남아있다. 잣향이 그윽한 이 술은 기름지지 않은 우리 음식들과 좋은 페어링을 보인다. 사진은 잣진주가 담긴 술잔
잣을 부재료로 사용한 술 중 잣의 함량이 가장 높은 술은 가평에 있는 전통주연구개발원에서 빚은 잣진주이다. 잣을 많이 넣은 만큼 잣의 기름 성분이 술에도 남아있다. 잣향이 그윽한 이 술은 기름지지 않은 우리 음식들과 좋은 페어링을 보인다. 사진은 잣진주가 담긴 술잔

# ‘가평잣생막걸리’는 0.12%의 잣이 들어갔는데, 잣을 넣은 술 중 가장 적은 양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잣의 맛은 미세하게 느껴지지만, 가성비로 본다면 탁월한 술맛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약간의 산미와 고소함이 다음 잔을 부른다. 같은 술도가에서 나오는 ‘잣막걸리1872’는 국내산 쌀로 만들어졌으며 기본형보다 많은 0.25%의 잣이 들어갔다.

여전히 함유량이 적어 잣의 존재감은 민감한 경우에나 찾을 수 있지만 고소한 맛으로 잣의 향미를 찾을 수 있다. 국내산 쌀을 사용해서인지 기본형보다 더 단맛이 느껴진다. 여성 내지는 술이 약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술이다. 대신 안주는 전과 기름진 음식보다는 김치나 나물, 맑은 전골류 등을 권하고 싶다.

# 산수양조장의 ‘백자주’는 홍천쌀과 홍천산 잣 1.95%로 만들어진 술이다. 첫 모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호모루덴스’. 이 양조장의 시그니처 술인 만큼 질감에서 이 술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호모루덴스’에 고소한 맛과 산미가 덧붙여진 느낌이다. 끝 맛에서 누가사탕 같은 고소한 맛도 느낄 수 있다. 호모루덴스가 오빠라면 백자주는 여동생같은 술이다.

# 전통주연구개발원에서 만드는 ‘잣진주’는 가평잣이 2.4%를 들어간 주세법상 약주이다. 현재까지 나온 잣술 중 가장 잣 함유율이 높은 술. 따라서 잣진주는 술의 라벨에 흔들어 마실 것을 권하고 있다. 잣의 기름성분이 골고루 술에 섞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술을 잔에 따르면 잣의 기름이 술잔 가득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잣의 고소함과 지방 성분이 단맛을 끌어올린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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