歐·日 선례 보니 감원 한파에 지방은행 휘청
“통화정책 부작용 대안 모색 함께 이뤄져야”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0%대(0.75%)에 진입하면서 한국도 ‘제로금리’ 시대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기준금리 인하분에 물가상승률 등이 반영되면 정기예금 등 실질금리는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앞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고 있는 주요국의 선례에 따라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동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일부 수신상품 금리 인하 시기를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한은이 지난 16일 기준금리에 당초 예상 2배인 ‘빅컷(0.50%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데 따른 조치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0.75~1.15%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이자소득세(15.4%) 등을 고려하면 이미 제로금리에 가깝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하분이 추가로 반영되면 고객이 얻을 수 있는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추락하게 된다. 유럽, 일본 등 일부 국가처럼 은행에 수수료를 내고 돈을 맡겨야 하는 시대가 다가온 셈이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자국의 실물경제 활성화를 위한 긴급 처방으로 지난 2014년 6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이러한 금리 결정 구조는 은행들이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을 대상으로 극히 낮은 차입비용으로 신용을 제공하도록 하는 유인을 갖게 하는 한편, 예금자들로 하여금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감내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낮은 대출금리로 시중에 유동자금이 풀릴 것이란 기대와 달리 유럽의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바탕으로 소비와 대출을 미루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독일 은행과 영국 HSBC 등 유럽 대형은행은 예대마진 수익이 급감했고, 이를 만회하고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대규모 지점 통폐합과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유럽권 은행 지점 수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4년 새 21%(2014년 3만5302개→2018년 2만7887개)가, 인력은 3년 새 5만여 명(2014년 63만9000명→2017년 58만6000명)이 줄었다.

지난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도 상황이 비슷하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시행 직후 10년물 국채 수익률까지 마이너스권에 돌입하자 일본 시중은행은 보통예금 금리를 연 0.001%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예금 이자보다 예금을 위한 송금수수료가 더 나가게 되자 일본 금융소비자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 집안 금고에 넣어두는 기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정책 도입 당시 일본에는 ‘가정용 금고’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예금기반이 줄면서 일본은행의 대출 능력은 자연스레 약화했고, 그 여파는 대출이자 수익 의존도가 약 70%에 달하는 지방은행 불황으로 이어졌다.

일본 지방은행의 지난 2018년도 당기순이익은 직전 회계연도 대비 21% 감소하는 등 최근 3년 연속 수익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또 일본에선 현재 금융그룹 간 산하 지방은행 인수합병 및 경영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이 금융당국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주요국 선례를 보면 마이너스 금리는 예금 수요를 빠르게 축소시키는 반면 대출 확대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며 “일부 금융그룹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는 2분기 순익 목표치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고 말했다.

이어 “예대마진 축소는 은행들이 대출처에 대한 심사 및 모니터링 비용을 절약하게 하는 유인이 될 수도 있으며, 이는 건전성에도 위협이 된다”며 “금융통화정책이 유발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이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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