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주 논쟁 마무리 짓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야
우리 쌀로 백여년 빚어온 술, 담백한 음식에 제격

소금간과 고추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 음식에 맞는 담백한 술을 만들기 위해 5년간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강원도 철원의 ‘한청’. 쌀의 단맛과 알코올의 쓴맛 등이 잘 어우러져 있는 술이다.
소금간과 고추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우리 음식에 맞는 담백한 술을 만들기 위해 5년간 각종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강원도 철원의 ‘한청’. 쌀의 단맛과 알코올의 쓴맛 등이 잘 어우러져 있는 술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위해서는 우리 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면서도 국민건강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선 속내를 그대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적 태도와 함께 오랫동안 지속해 온 행정편의주의는 우리 술 시장의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됐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고유한 문화이면서도 1급 발암물질인 술이 지닌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와인이나 영국의 위스키, 중국의 백주 등을 생각한다면, 그에 걸맞은 우리 술의 위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 소개할 술은 주세법상 청주다. 왜 서두에서 제도와 행정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부각했는지는 우리 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했을 듯싶다.

청주는 원래 우리 고유의 술 이름이다. 다 익은 술의 맑은 부분을 청주라 불렀고 남은 지게미에 물을 더 넣어 거른 것이 탁주(막걸리)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주세법 체계에선 입국(흩임누룩)을 사용한 술을 청주라 부르고 우리 술 청주는 약주로 정의된다.

해방 이후 주세법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술이 지닌 문화적 성격과 역사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주류산업 종사자들의 이해에 맞춰 개정되면서 술 이름에 대한 근원적 문제가 남게 됐다. 이름하여 ‘청·약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선 이 논쟁보다는 이 땅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해서 100여년 동안 생산돼 온 주세법상 청주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미 좋은 술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시장에는 좋은 주질의 술들이 출시돼 있다.

값싸게 만든 술부터 정미율 21%의 고급주까지 제품도 다양하다. 술은 필요에 따라, 음식에 따라 선택해서 마실 수 있다. 따라서 담백한 요리와 생선회 등은 청주와 좋은 마리아주를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파인다이닝을 지향하는 식사와 요리가 늘고 있어서 그 수요는 더욱 늘어날 시장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과 무역분쟁을 겪고 있는 요즘 같은 시절 청주는 좋은 대체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이다.

우리 쌀을 흩임누룩으로 빚은 술이 주세법상 청주로 정의된다. 최근 출시된 청주들은 정미율 21%의 고급주부터 가성비를 갖춘 주질 좋은 술까지 다양하다. 사진의 오른쪽부터 한청(초가), 조선주조사(우포의 아침), 하타(신탄진주조), 경주법주 초특선(금복주), 우렁이쌀청주(양촌양조장) 순이다.
우리 쌀을 흩임누룩으로 빚은 술이 주세법상 청주로 정의된다. 최근 출시된 청주들은 정미율 21%의 고급주부터 가성비를 갖춘 주질 좋은 술까지 다양하다. 사진의 오른쪽부터 한청(초가), 조선주조사(우포의 아침), 하타(신탄진주조), 경주법주 초특선(금복주), 우렁이쌀청주(양촌양조장) 순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최근 출시되고 있는 청주 몇 종을 소개한다.

조선주조사 : 경남 창녕에 있는 ‘우포의 아침’에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14%의 청주이다. ‘조선주조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술 산업의 현황을 정리한 책이름이기도 하다. 네트로적 감성을 적용한 상표 네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술에 대한 첫 느낌은 깔끔함이다. 조미료가 안 들어간 ‘청하’라고 하면 우스운 표현일까. 향이 적어서 뒷심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성비 최강의 술이다.

하타 : 충남 신탄진주조에서 생산하는 알코올 도수 16%의 청주다. 하타는 일본에 술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고 주신으로 모셔지고 있다는 백제인의 이름이다. 청주지만 술의 질감은 두텁다. ‘백화수복’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주의 맛과는 다른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잘 익은 참외의 맛은 우리 안주와 적절히 균형을 이룰 것 같다. 산미를 찾는 분들에겐 더 추천할 수 있는 술이다.

우렁이쌀청주 : 충남 논산에 있는 찾아가는 양조장 ‘양촌주조’에서 만드는 술(알코올 도수 14%)이다. 청주이지만, 찹쌀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술의 첫맛은 구수함이다. 누룽지 같은 감칠맛이 따라오고, 한산의 명주 ‘소곡주’의 경향성도 느껴진다. 찹쌀의 단맛이 싫지 않다. 술의 분류는 청주지만, 그냥 구수한 우리 술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지는 술이다.

한청 : 강원도 철원에 있는 초가양조장에서 지난해부터 생산하고 있는 청주다. 토종효모를 입힌 입국으로 빚었으며, 브랜드명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청주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만들어진 술이기도 하다. 철원오대미로 빚었는데 쌀의 풍미가 잘 느껴진다. 알코올의 쓴맛과 쌀의 단맛 등이 잘 배어 있는 균형 잡힌 술이다. 한편 초가의 이창호 대표는 ‘한청’을 개발하게 된 동기와 관련 “우리 음식에 더 잘 어울릴 술은 일본의 사케가 아니라는 생각 끝에 지난 5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이 술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경주법주 초특선 : 금복주에서 1년에 1만 병 한정생산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청주다. 올해부터는 21% 정미율로 쌀을 깎아내 술을 빚고 있는데, 압도적인 술맛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청주중에 유일하게 정미율을 밝히고 있는 술이기도 하다. 입에서 매화향이 끊이지 않고 맴돈다. 군맛이 없으며, 균형감도 무엇하나 과하지 않게 잘 잡혀 있다. 그에 걸맞게 가격도 제법 나간다. 하지만 좋은 자리에선 기꺼이 사서 마시고 싶은 술이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