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 리더의 언어 선택 중요성이 크게 부각
품격·겸손, 우리 사회의 주요한 메시지 기준 될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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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21대 총선이 지난주 치러졌다. 결과는 한 번도 진보 진영이 경험하지 못한 압도적인 승리다. 견제역할을 해야 할 야당은 리더십 부재를 겪으며 겨우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면서 통한의 패배를 맛보았다.

이번 선거의 정치적 의미를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에서 우리는 리더의 메시지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체험하게 됐다. 감수성이 떨어지는 리더들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허했으며, 품격을 잃은 문장은 지지자들의 마음까지도 돌아앉게 했다.

야당은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정부와 여당을 세차게 공격하도록 만들었고, 가능하다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가 아닌 공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도 연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정치는 피곤하다. 특히 바라보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선거 기간 내내 야당은 자신들이 잘못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 공감 가지 않는 이야기로 유권자들을 설득했다. 특히 ‘세월호 텐트’와 ‘n번방 호기심’ 발언 등은 청중들의 감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메랑으로 돌아올 후폭풍도 생각하지 않은채 꺼냈다가 호되게 당한 말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비단 말실수는 야당에만 있지 않았다. 여당 성향의 정치인들이 만든 비례정당의 경우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정제되지 않은 속마음까지 꺼냈다가 최종 여론조사결과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지를 안게 됐다. 또 유시민 작가도 구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적으로는 그의 예측(?) 이상의 결과가 나왔지만 ‘범여권 180석’론은 야당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고, 다음날 더는 정치 비평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꺼내게 했다.

이처럼 이번 선거는 역대 선거 중 말과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선거다. 코로나19가 만든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경제실패론은 물론 코로나 대응 실패론 등 야권이 설정한 프레임 중 제대로 기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선거 직전 야당의 위기론을 설파해 전통적인 지지지역으로부터 최소한의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가 단순히 말실수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커뮤니케이션은 주고받음이다.

의견과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감성적 교감을 하게 되고 교감은 동의로 연결된다. 그런데 주고받음이 없는 일방성은 귀를 닫게 만든다.

코로나 대응실패론의 경우가 대표적인 불통 메시지였다. 일부 언론과 야당은 선거 내내 초기대응실패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잘못해서 험한 일을 겪고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해서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메시지였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우선 유럽과 서방의 언론들은 우리의 팬데믹 대응을 모범사례로 치켜세우며 연일 보도에 열을 올렸으며, 우리의 진단키트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각국이 긴급하게 원하는 의료품이 되었다. 이를 구하기 위해 타국의 대통령들이 전화를 걸어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주요 스피커들은 대응실패론을 주창했다. 이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인지부조화현상으로 그 정치인들을 바라보게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길 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고 듣는 것이다. 그 코드가 맞아야 거울 뉴런이 작동해서 공감 능력이 발휘된다. 그런데 야당의 리더들은 공감 능력을 사지 못했다.

팬데믹 대응실패론 만큼, 세월호 막말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픔을 후벼 파는 이야기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이며 경청이다.

심금을 울린 위대한 연설들의 공통점은 ‘고무적이며 흡인력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이다. 또 정신의 고양은 물론 힘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네거티브 메시지들은 정반대의 포지션을 지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선거에 승리하고 난 뒤 여당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다. 그들은 겸손함을 주문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말하며 말을 아꼈고, 기뻐하는 모습도 자제했다. 말도 품격이 있어야 하지만 행동도 그만큼 격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팬대믹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부의 지침을 따랐고, 그 범주에서 판단하고 행동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세계가 주목하는 뉴노멀로 다가왔다.

정부가 선택한 제도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러러 봐왔던 서구 국가들의 혼란과 혼동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라는 BBC의 기사를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리더의 메시지는 이렇게 청자의 마음을 먼저 읽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메시지는 모두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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