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바비큐의 공통점, 신에게 바쳐진 술과 음식
‘와인을 딸 시간’ 시간 속에 커가는 주인공의 성장기

영화 ‘와인을 딸 시간’은 와인과 바비큐를 소재로 만든 소믈리에를 꿈꾸는 청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다. 진부할 것 같은 소재이지만, 적절한 속도감과 와인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더욱 맛을 낸다. 신을 위해 만들어진 와인과 바비큐지만, 결국은 인간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듯 두 음식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할 것이다. 사진은 ‘와인을 딸 시간’의 영화 포스터  (출처=다음 영화)
영화 ‘와인을 딸 시간’은 와인과 바비큐를 소재로 만든 소믈리에를 꿈꾸는 청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다. 진부할 것 같은 소재이지만, 적절한 속도감과 와인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더욱 맛을 낸다. 신을 위해 만들어진 와인과 바비큐지만, 결국은 인간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듯 두 음식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할 것이다. 사진은 ‘와인을 딸 시간’의 영화 포스터 (출처=다음 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바비큐와 와인. 언뜻 보기에 낯선 조합이다. 물론 와인의 안주로 바비큐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형성이 떨어져서 느끼는 낯섦일 뿐이다.

낯선 조합이지만 와인과 바비큐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핵심적인 내용이랄 수 있는 태생부터 만들어지는 절차까지 둘은 이란성쌍둥이 같은 존재다.

먼저 두 음식은 모두 신을 위해서 기획됐다. 출발은 자연에서의 발견과 모방이었지만, 인간은 와인과 바비큐를 신에게 제사 지내면서 유한한 자신들의 삶에서의 안녕을 비는 한편 식욕도 채웠다.

최초의 와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삶의 도구로서의 와인이 문화로 성장한 곳은 고대 그리스다.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낸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즐기며 신처럼 사유하려 했다. 그리고 이 문화는 결국 종교에서 꽃을 피워 가톨릭과 동방교회의 주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번제(燔祭)다. 희생제물을 가죽만 빼고 모조리 불에 태워 그 향기로 신을 기쁘게 해주는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트로이와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는 호메로스의 사사시 <일리아스>에는 신에게 훈연향을 바치는 제사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제우스의 후예들은 황소와 염소의 기름진 넓적다리뼈를 태워서 올림푸스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규모가 큰 제사에선 소 100마리의 제물을 바치기까지 했다. 

이처럼 와인과 바비큐는 출생의 비밀이 같다. 그렇다면 만드는 절차는 어떨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무다. 와인이나 바비큐는 모두 나무의 작용으로 맛을 완성한다. 와인은 오크통에서의 숙성을 통해 맛이 익어가고 바비큐는 잘 마른 나무로 구워내 육즙 가득 담긴 고기의 맛을 만들어낸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은 와인과 바비큐가 잘 버무려진 영화 〈와인을 딸 시간〉에 대해 말하려 한다. 프렌시스 페니 감독의 첫 작품으로 올 3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확실한 꿈도 없이 방황하던 청년(일라이자)이 소믈리에라는 목표를 정한 뒤, 자신의 앞을 막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물리치면서 그 목표에 다가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아직 어려서 딸 수 없었던 보르도의 와인이 오랜 숙성의 시간을 거쳐 포텐셜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아버지는 대를 이어 가족사업으로 운영해온 바비큐 식당을 아들 일라이자가 이어주길 바란다. 그런데 흔한 소재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이견을 보이면서 갈등하게 되고, 일라이자는 결국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다.

와인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여자친구와 어머니의 심리적 후원을 받으며 소믈리에 학교에 다니게 된 일라이자는 자신을 더욱 와인에 벼리기 위해 교환학생으로 파리까지 향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화해는 쉽지 않다. 게다가 정신적 후원자였던 어머니까지 지병으로 죽고 만다. 여기서 아버지의 회심 장면이 등장한다. 멋지게 와인을 추천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아들의 열정을 엿보게 된 것이다.

시험을 앞둔 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탈리아산 바롤로 와인을 가지고 아들을 격려해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열렸지만, 일라이자는 첫 번째 도전에서 아깝게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소믈리에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와인을 딸 시간〉은 술을 핵심 소재로 삼은 영화처럼 와인을 닮았다. 와인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과정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와인은 시간에 비례해서 맛을 보여준다. 바비큐 또한 낮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 땀 흘리며 고기를 구워내는 핏마스터(바비큐 장인)의 정확한 손길에 의해 최고의 맛이 결정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와인과 바비큐를 같이 곁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존 사보의 책 <더미를 위한 와인 푸드 페어링>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바비큐처럼 소스가 강한 음식을 먹을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강한 소스를 사용하는 음식의 경우 소스의 지배적 맛에 맞춰 와인을 페어링하라. 조림 소스는 주로 감칠맛이 풍부하므로 성숙하고 감칠맛이 풍부한 와인을 곁들여도 결코 기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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