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공리주의·시장주의보다 공동체주의가 답
금융지주와 은행 등 ’공동체 우선‘ 메시지로 격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역사가 초래한 인류의 도약은 가히 재앙이라 할 만하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의 말이다. 대량으로 사망하고 대량으로 학살당하는 파괴적인 20세기의 전쟁을 바라보면서 그는 “역사가 야기한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의 책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 실려 있다. 쇤베르크는 20세기의 비약적인 발전을 설명하면서 야스퍼스를 인용한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야스퍼스의 지적이 여전히 시의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적은 세기를 뛰어넘어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을 열고 있는 오늘에도 우리를 아프게 질타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인 전쟁이 아니어도, 대량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역사적 현장을 직접 지켜보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전 세계가 경악했고 공포에 떨면서 지난 4개월을 보냈으며, 이 기간에 600만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이 중에 3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는 현장을 말이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은 영화 〈컨테이전〉 보다 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라고도 말한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문명을 가를 수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같은 위기를 겪고 있으면서도 각 나라는 자신의 시스템과 문화, 기술 수준 및 정치적 의도에 맞춰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공리주의적 시각은 철저히 실패했으며, 시장주의에 입각한 정책도 실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공동체주의적 시각에서 팬데믹 상황에 대응한 우리는 지난 2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국가에서 5월말 현재 사망자가 270여명에 그친, 그래서 가장 효과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

이처럼 팬데믹에 대한 대응과 효과가 차이를 보이면서 각국 정부가 펼친 정책에 대한 도덕철학적 분석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 숫자에 놀라 한정된 의료진들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치료할 환자를 선별하기도 했고, 우리처럼 감염이 의심되는 대상자를 예외 없이 검사한 국가도 있었다.

또 통행제한령 등의 극단적인 방역책을 펼친 국가도 있었고 우리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편 나라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정책의 결과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는 공동체주의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공리주의와 시장주의의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주의에 대한 태도는 국가의 정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이 겪고 있고, 전 세계인이 고통받고 있는 감염병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는 물론 기업들도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이 공공선에 부합되기도 하지만, 그 결과가 기업의 이익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융권에서 펼쳐진 이벤트를 정리하면 이러한 태도는 한눈에 들어온다. 의료진에 대한 격려의 목소리를 담은 ‘덕분에 챌린지’와 고통받는 모든 국민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힘내라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벌어지는 희망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정세균 국무총리와 함께 김태영 은행연합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2020 한국포럼’에서 ‘덕분에 챌린지’ 행사를 가졌다.

또 송종욱 광주은행장과 빈대인 부산은행장, 이동빈 Sh수협은행장 등도 독자적으로 ‘덕분에 챌린지’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진옥동 신한은행장과 송종욱 광주은행장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캠페인을 벌였으며,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공익 프로그램을 담은 ’코로나 극복’ 광고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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