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의연 벗어던지고 상상력 발휘하는 조직으로
권광석 우리은행장, 경영혁신 출발점 복장자율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가 바뀌거나 국가의 정체가 변하는 경우는 기존 질서가 더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념과 성장 동력을 갖춘 세력이 모순에 노출된 시스템을 교체하는 과정이다.

수많은 왕조와 국가가 명멸했던 인류사에서 개혁과 혁신은 새롭게 권력을 쥔 세력이 펼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보수세력은 온갖 명분을 내세우며 개혁을 방해한 것이 오늘날까지의 역사였다.

그래서 수많은 개혁과 혁신은 그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좌절됐으며, 그 시간만큼 인류는 더 나은 세계로 이행하지 못하고 정체를 경험하며 새로운 개혁과 혁신세력을 기다려야 했다.

중국사에서 대표적인 개혁 실패 사례는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일 것이다. 당송8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왕안석. 송나라 개국 이후 100년이 흐른 시점이다. 어느 나라나 왕조도 100년의 세월이면 국가의 기틀이 완성돼 안정된 사회를 유지한다.

그런데 안정이 됐다는 말은 서서히 기득권의 고착현상이 발생한다는 뜻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북방에서의 거란과 티베트의 발흥으로 송나라는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같은 시기에 왕안석은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하려는 신종에 의해 발탁돼 정치 경제 전반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개혁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봉착한다. 그 대표선수가 《자치통감》이라는 제왕학의 교과서를 쓴 사마광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마치 정도전에 맞선 정몽주, 혹은 조광조와 대결한 윤임· 윤원형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마광은 최후의 승자가 돼 웃었고, 왕안석은 역사책에 대문장가라는 별칭을 부여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실에서 충분히 수용될 수 없는 정책이라면 반대세력의 반발을 예측하고, 점진적 확대책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개혁세력은 항시 서두르다 조심스럽게 만들어왔던 판을 깨 왔다. 왕안석의 실책도 같은 이유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개혁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최소한 개혁과 혁신에 대한 방향에 민의가 내포돼 있어야 한다. 민의를 수용하지 못하면 결국 무산되고 마는 것이다.

금융권도 무수히 많은 은행장과 대표이사가 선출되는 가운데 개혁 및 혁신의 기치를 내걸지 않은 적이 없는 업종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개혁과 혁신은 어떤 성과를 냈던 것인가.

만약 금융권의 모든 수장들이 내세웠던 개혁과제가 완수됐다면 우리는 혁신적인 금융환경 혹은 호실적을 기록하는 금융회사들 틈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리더들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가운데 권광석 우리은행장이 혁신의 신호탄으로 복장 자율화를 내걸었다. 영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출발점을 복장에서 찾은 것이다.

은행들이 영업점 창구직원에 대한 통일된 복장을 도입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한때 이 복장은 이 직업군에 대한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시각에서 획일적으로 통일된 복장은 구태의연하다.

권 행장이 바라본 혁신의 지점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누구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으로의 변화였다.

통일된 복장이 자긍심으로 연결될 때 그 복장을 취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땐 복장에 얽매여선 안 된다. 직업군을 가르는 지표가 돼서도, 그리고 남녀를 구분하는 기준이 돼서도 안된다.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호복기사(胡服騎射)의 기치를 내걸었던 속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복식개혁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복장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복장을 바꿔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은행이 자율적인 복장을 선택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다. 상상력의 무한대결이 펼쳐지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 있기에 더욱 그렇다.

복장에서 혁신을 이끌 준비가 됐다면 이젠 실추된 은행의 이미지와 이탈한 고객을 회복할 수 있는 은행의 실적과 이미지다. 지금부터가 진짜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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