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소설 속에 꼭 등장하는 ‘욕망’이라는 감정
밀려났을 때 반추만 할 수 있어도 경계는 벗어날 수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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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이카로스의 교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히자 아들 이카로스와 탈출을 계획한다.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붙여 날개를 만들어 섬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다이달로스는 밀랍의 성질을 잘 알았기에 태양에 가까워지지 않게 비행할 것을 이카로스에게 당부한다. 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이카로스는 결국 더 높이 날고 싶어 태양을 향한다. 결론은 우리가 다 알고 있듯 추락이다.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은 제우스와 아들 에파포스에게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당한다. 파에톤은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아버지인 태양신 헬리오스를 찾아가게 되고, 자신이 태양마차를 몰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훈련되지 않은 파에톤은 거칠게 흥분한 말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길을 잃게 된다. 혼란에 빠진 태양마차로 인해 화재가 일어나고 냉해가 일어나자 제우스는 번개로 태양마차를 멈추게 한다. 물론 파에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 신화들이 가지고 있는 교훈은 욕망의 경고다. 하지만 이 신화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물론 개인의 인생사에서 우리는 욕망이 만들어낸 참혹한 결과를 자주 목격한다. 최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에 여념이 없는 두산과 금호. 이 기업들이 누리던 과거의 영광은 더 많은 실적과 성장을 위한 욕망과 맞바꿔졌다.

어디 이들뿐이랴. 코로나19에서 비롯된 경제침체는 더 많은 기업과 개인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욕망에 충실했던 1920~30년 대의, 이름하여 미국의 ‘재즈시대’를 고발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유명하다.

그를 지금의 명성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개츠비>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빚어낼 수 있는 참사의 끝을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보고서다. 대공황 직전 달러로 불쏘시개를 했던 그 시절, 사랑과 돈에 눈먼 욕망은 매일 벌어지는 헛된 '향연' 속에 녹아들었고, 그 결과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이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피츠제럴드. 하지만 44세의 나이에 알코올중독으로 힘든 말년을 보내던 시절은 달러 호텔(1달러로 잠을 잘 수 있는 호텔)을 전전해야 했고, 통조림과 비스킷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을 정도로 비참했다.

생계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짧은 단편소설을 쓰면서 근근이 연명했던 그 시절, 의사로부터 술과 관련한 시한부 진단을 받은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능가하는 작품에 매달린다.

이 소설을 위해 그는 끼고 살았던 술까지 절제하면서 작품에 전념한다. 미완성 유고로 남게 됐지만, 이 소설에서도 ‘욕망’은 빠지지 않고 소설의 본류를 관통하고 있다.

대공황 직후, 즉 그의 사후 출간된 <라스트 타이쿤>, 우리말로 옮기면 ‘마지막 거물’ 정도의 제목이 되는 이 소설에서 피츠제럴드는 당시 연극에 밀리고 있던 영화를 산업으로 부흥시킨 영화업계의 거물 ‘먼로 스타’를 등장시킨다.

먼로 스타는 실제 1930년대 MGM을 이끌어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사를 만들었던 어빙 솔버그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소설에서 먼로는 영화를 정말 사랑해서 일에 미쳐있는 일 중독자로 표현된다. 

하지만 일에 미쳐있다고 해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날 그에게도 죽은 아내와 닮은 캐슬린 무어라는 젊은 여인이 나타난다. 그렇게 사랑은 찾아왔지만, 리더로서의 번민은 순간의 선택에서 그를 밀어낸다.

영화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할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던 먼로는 일에 대한 욕망과 사랑과 사람에 대한 욕망 속을 헤매다가 결국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만다.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중에 정이라는 사람이 있다. 우리에겐 정이천(이천은 호)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어록 중에 ‘순리즉유, 종욕유위(順理則裕, 從欲惟危)’라는 글이 있다. 도리를 따르면 마음이 여유롭고, 욕망을 따르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소학>은 물론 <근사록>과 <고문진보>에도 인용돼 있다.

욕망이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기에 여러 저자가 이 글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말의 참뜻은 참 좋지만, 스피노자의 정의처럼 부에 대한 욕망은 무절제하다. 그래서 욕망의 영역에는 중용이 깃들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 나가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글처럼 개인과 기업, 정부는 역류에 밀려나면서도 쉼 없이 전진하는 존재들이다. 다만 역류에 밀려날 때 자신을 반추할 수 있다면 욕망의 경계를 그나마 벗어나 평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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