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요구불예금, 6개월 새 16.6% 증가
예금 수요 바닥…투자상품도 규제에 판매 난항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은행들이 각종 투자상품 판매 제약에 ‘머니노마드(재테크 유목민)’ 고객을 놓칠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신한·국민·우리·하나)의 정기예금 잔액은 505조5521억원으로 지난 1월 말(517조4986억원)보다 약 12조원(2%) 줄었다.

반면 지난 6월 말 4대 시중은행에 쌓인 대기성 자금 성격의 요구불예금은 498조3511억원으로 지난 1월 대비 약 71조원(16.6%) 증가했다.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시대로 이자가 현저히 낮아지자 정기예금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당장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쌓아두고만 있는 이들이 늘어난 거다.

업계는 이러한 대기성 자금 대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 보고 있다. 부동산에 투자하기엔 규모가 크지 않고, 주식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증권사 등 타 업종으로의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예·적금 대신 펀드상품을 판매하는 데 주력해야 하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이슈로 고객의 불신이 높아진 데다 고난도 투자상품(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최대 원금손실가능비율이 20% 초과) 판매에도 제한이 생겼다.

특히 예금 수요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중금리를 제공하는 주가연계신탁(ELT) 총량제는 은행권에 타격이 되고 있다. ELT는 증권사가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을 편입한 은행의 신탁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재발방지책 중 하나로 은행의 ELT 판매에 제동을 걸었다.

완전한 판매 금지 조치는 너무 가혹하다는 은행권의 반발에 기초자산이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이고 공모발행, 손실 배수 1 이하인 상품만 지난해 11월 말 은행별 잔액 이내 수준의 판매를 허용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은행권 ELT 잔액은 약 34조원 수준이다.

ELT는 발행 시점의 주가지수 등을 기준가격으로 매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조기상환이 가능하다. 이에 은행들은 조기상환 후 재투자를 받는 식으로 잔액을 늘리지 않고 ELT를 판매했다.

그러나 최근 ELS의 조기상환이 미뤄지면서 은행의 ELT 상품 판매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조기상환과 재판매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도가 소진돼 ELT를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ELT 잔액은 30조8733억원에 달한다. 잔액 관리 차원에서 은행 대부분은 현재 ELT 신규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저원가성의 요구불예금 증가는 은행입장에서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줄어드는 셈이라 부담이 적지만, 언제 빠질지 모르는 자금이다 보니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적금 수요는 급격히 떨어졌고, 투자상품 판매에 집중해야 하지만 판매제한 규제로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규제대상이 아닌 주가연계펀드(ELF)나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판매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해당 상품은 수익률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완전한 대체제가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