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금융사기 연루됐어도 대포통장 명의인 등록
예·적금, 대출, 카드 신청제한...이의제기 절차 2달 소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A씨는 최근 B은행을 방문해 대출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여름 A씨의 계좌에는 수천만원이 잘못 입금된 적이 있다.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한 C씨가 범인이 불러준 계좌를 잘못 받아적어 A씨 통장에 돈을 보냈던 거였다. A씨는 즉각 돈을 돌려줬고, 경찰에 사건과 전혀 관련없음을 확인받았다. 하지만 은행은 사기 이용계좌기록이 있는 한 신규거래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해 도입된 대포통장 명의 등록제가 범죄와 연관 없는 일부 금융소비자에까지 불편을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 명의인 정보는 상습성·고의성에 따라 최장 3년 동안 은행연합회 전산에 등록되며 전(全) 금융권에 즉각 공유된다.

대포통장 명의인에 등록되면 신규 계좌개설과 체크·신용카드 발급, 비대면 거래가 제한되며 대출 심사에도 대포통장 명의인이었다는 사실이 대출 집행승인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금융감독원은 대포통장 방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대포통장 명의인 등록제를 도입하고, 금융거래 제한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 운영해왔다.

그러나 사건 연루에 대한 고의성 여부 판단 없이 금융사기에 연루된 모든 대포통장 명의인이 금융거래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비합리적인 체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명의자 모르게 통장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하는 신종 금융사기, 피해자의 송금 실수 등으로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제3자가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연루돼 피해를 본 사례에도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자체가 피해액 환급에 맞춰져 있다. 통장 명의인이 본인 정보가 노출돼 사기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피해금이 한 번이라도 지나간 통장의 명의인은 즉각적인 금융거래 제한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억울하게 금융사기 사건에 휘말려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된 경우 해당 통장 개설 은행에 이의를 제기해 정보를 삭제할 수 있지만, 신청부터 처리되기까지는 통상 2달여의 시간이 소요된다.

또 대포통장 명의인 등록에 대한 은행의 고지가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통장 명의도용 피해를 본 금융소비자가 이의 제기 신청을 뒤늦게 해 금융상품 가입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객의 대포통장 이력에 고의성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이의 제기 심사에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불가피하게 사건에 휘말린 고객까지 장기간 금융거래 제한을 겪으선 안된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명의인 등록사실 고지 의무는 없지만, 사건에 따라 고객이 억울할 수 있는 경우 미리 알려 이의제기 신청을 유도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