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이어 긴 장마까지, 금융소비자 크게 위축
금융권이라도 본분 지키며 일상 복원의 힘됐으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시문=김승호 편집위원>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는 속담이 실감 나는 세월이다. 석 달은 고사하고 두어 달 남짓 이어진 장마에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힘을 보태며 한반도는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처럼 질척이다 이제서야 그 끝을 보이려한다.

성한 곳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반도의 곳곳은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로 가득하다.

모든 강의 홍수 조절용 댐들은 더는 물을 가둘 여력이 사라지자 급하게 방류를 시작했고, 결과는 하류 곳곳이 강과 논을 구별할 수 없는 물의 세계가 됐다.

물이 빠진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의 처참한 장면은 농부의 깊게 팬 주름처럼 시름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었고, 침수된 가옥과 주차장의 자동차들은 서민의 폭폭한 마음에 상처만 더해줬다.

어디 농부와 서민들의 삶만 그렇겠는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우중 세계가 펼쳐놓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듯 살아가는 느낌이다.

시혜처럼 구름 사이로 햇볕이 고개를 내미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펴질 만큼 축축한 나날을 보내는 일상이 힘들기만 하다.

집안 곳곳은 누르면 금방이라도 물이 축축하게 배어 나올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되면서 옷장 속의 양복들은 곰팡이 슨 듯 퀴퀴한 냄새가 잡히고 물 닿는 화장실 타일 사이에는 보이지 않던 검은 자국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청소해도 빛나거나 뽀송한 기운은 잡히지 않는다.

물론 이런 우울한 일상은 긴 장마가 가져다준 것만은 아니다. 올 초부터 전 세계를 긴장시키며 팬데믹으로 몰고 간 코로나가 일차원인일 것이다.

여기에 두 달 남짓 긴 장마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일게다.

그런데 이런 장마가 요즘에만 있었겠는가. 가뭄 때는 농사가 안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번처럼 크고 길게 장마가 지면 홍수가 나 더 큰 피해가 생긴다는 뜻으로 ‘가뭄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석 달 장마에 대한 이야기와 결은 다르지만 장마의 폐해를 적시하고 있는 속담들이다. 이처럼 우리는 장마와 홍수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온 민족이다.
 
이는 이웃 중국도 마찬가지다. 고대국가의 형성기 중국에서 등장한 통치세력들은 치수를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할 국정과제로 여겼다.

양쯔강과 장강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정권의 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평가포인트였던 것이다. 치수에 대한 이러한 중국인의 태도는 이번 장마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던 삼협댐 붕괴설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의 고전에서 홍수와 관련한 글들을 찾아보면 많은 비에 호들갑을 떠는 것을 경멸하고 있다. 《장자》의 ‘소요유’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大沈稽天而不溺(대침계천이불익).” 
큰 홍수가 나서 물이 하늘까지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풀이를 보면 ‘하늘에 닿을 만한 큰 홍수가 나도 진정으로 완성된 인간이라면 그 물에 빠지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건내는 뜻은 사물에 대해서 항상 정신이 초월해 있었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良農不爲水旱不耕(양농불위수위한불경).” 《순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훌륭한 농부는 홍수나 가뭄으로 인해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환경이 변화해도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다하라는 말인데, 어디 성인들의 말을 따르기가 쉬운 일인가.

코로나로 위축된 경제에 긴 장마로 금융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성인의 말을 따라 가기는 힘들지만, 은행 및 금융회사들의 따뜻한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금융권이라도 환경 변화에 흔들림 없이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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