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7 06:05 (일)
[응답하라, 우리술 167]인류는 어떻게 술에 끌렸는가
[응답하라, 우리술 167]인류는 어떻게 술에 끌렸는가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8.18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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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당분, 가장 빠르게 에너지 활용되는 영양분
알코올 친화적 진화, 분해효소까지 만들며 적응
인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당분이 많은 과일을 섭취했고, 이 과정에서 에탄올에 친화적으로 진화돼 여전히 술을 찾는 존재가 됐다. 사진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술도가들의 술이다.
인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당분이 많은 과일을 섭취했고, 이 과정에서 에탄올에 친화적으로 진화돼 여전히 술을 찾는 존재가 됐다. 사진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술도가들의 술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맛은 후천적으로 알아채는 맛이다. 처음 접할 때는 쓴맛과 매운맛 혹은 달지만 유쾌하지 않은 향미에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래서 별로 친숙해지고 싶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음료다.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 시원한 청량감은 느낄 수 있었지만, 입안 가득 쌉쌀한 홉맛이 느껴졌을 때 이를 기분전환을 위한 상쾌함으로 느끼기보다는 화장품 잘못 묻어 있는 물맛 혹은 하수구의 물맛 정도로 느껴본 적은 없는가.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높았던 희석식 소주를 처음 마셨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입을 채우면서 들어오는 알코올의 느낌은 잘못 삼키다 입안에서 캡슐이 터져 어쩔 수 없이 맛봐야 했던 양약의 쓴맛으로 생각해본 적도 있지 않은가.

그나마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막걸리는 마시기는 쉬웠어도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시금털털한 맛에 뱉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술에 대한 첫인상은 대체로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알코올음료는 일상 깊숙이 개입하면서 생활의 한 부분이 돼갔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희로애락을 달래거나 돋아주는 신비의 묘약처럼 인류는 술과 함께 역사를 써온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나빴던 술맛이 좋게 느껴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사이에 뱉어내고 싶을 만큼 입과 혀를 혹독하게 고문했던 술맛이 천지개벽이 일어나 황홀경에 빠질 만큼 달콤한 맛으로 변신했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앞서 말했듯 술맛은 알아채는 맛이다. 선천적으로 익숙한 맛이 아니라 술의 효과를 얻기 위해 자꾸 마시면서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맛이다.

역설적이게도 인류는 알코올 친화적으로 진화해왔다. 즉 알코올을 탐닉할 수 있는 조건을 진화과정에서 갖추게 됐다는 점이다. 최소 2400만년 전부터 영장류가 섭취해온 과일에 그 답이 있다.

처음 맛본 술맛에 반해 술을 마시는 경우는 없다. 알코올을 좋아하도록 진화됐지만 술은 어른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을 알아채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처음 맛본 술맛에 반해 술을 마시는 경우는 없다. 알코올을 좋아하도록 진화됐지만 술은 어른의 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을 알아채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과일이 지닌 당분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가장 빠르게 취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었다.

따라서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하고 수렵 채취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과일을 섭취하고 농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과일의 단맛은 어떻게 우리를 유인하는 것일까. 이것도 진화의 비밀이 뒤에 숨겨져 있다.

사과, 포도 등의 과일은 진화론적으로 더 많은 종자를 뿌려 개체 수를 늘리고자 한다. 그래서 다 익은 과일은 스스로 여물었다는 징후를 내보내 씨를 흩뿌려줄 수 있는 매개체를 유인하게 된다.

그 역할을 사람과 영장류가 주로 맡았다. 그런데 과일이 다 익었을 때 내는 징후가 술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 익은 과일은 달콤한 향기를 풍기게 되는데, 그 향기 성분이 에탄올이다. 과일에 들어 있는 에탄올은 과일 함량의 0.6% 정도. 이를 사람이 섭취한다면 혈중알코올농도가 대략 0.01%가 된다고 한다.
 
이처럼 다 익은 과일을 먹는 행위는 당분을 취해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지만, 과일에 담겨 있는 에탄올을 통해 알코올에 익숙해지는 효과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

따라서 에탄올 친화적으로 진화해 온 인류는 다양한 알코올음료를 발견하거나 발명해내면서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활용하거나 사회화 및 지도자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에탄올에 자연스럽게 친화된 것은 아니다. 알코올은 간에서 해독하게 되는데, 진화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도록 알코올 분해효소가 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에서 아직 내려오지 않은 초기 인류는 과일을 먹을 때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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