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상장 폐지 재량권 남용했다며 무효 결론
법원, 세칙·시장규정 뛰어넘는 세밀한 심사 주문

<대한금융신문=강신애 기자> “이번 대법원 판결로 거래소의 상장폐지 업무는 아예 손발이 묶인 셈이다. 기존 규정을 뛰어넘어 더 세심한 모니터링과 심사를 하라는 얘긴데 이렇게 모든걸 다 봐주면 상장폐지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딨겠나.”

사상 초유의 상장폐지 번복 결론을 두고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반응이다.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코스닥상장사 감마누의 거래가 재개됐다. 

지난 2018년 10월 5일 매매 정지 이후 약 2년 만의 재개다. 대법원이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 무효에 손을 들어준 결과다. 

법원은 거래소가 상장폐지와 관련한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점을 인정해 이 같은 결과를 냈다.

감마누가 비적정 감사의견이 나온 이후 재감사 진행 과정에서 추가 개선 기간을 요구했으나 거래소가 추가 개선 기간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거래소는 규정상 개선 기간 부여가 불가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거래소 규정 개정 강수 뒀지만 결국 패소

거래소 규정 개정은 이번 소송의 1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9년 2월 감마누는 거래소의 재량권 남용을 근거로 남부지법에 상장폐지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거래소는 1심 재판에 앞서 부랴부랴 규정을 변경했다.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 시행세칙 제33조 제4항에 따른 개선기간을 1년으로 연장한 것이다. 개정 전에는 같은 조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상장사는 6개월 미만의 개선기간만 부여받았다. 실제 감마누가 부여받은 개선기간도 4개월이었다.

규정 개정을 통해 감마누와 같은 사례 발생을 방지하지만, 감마누의 경우 기존 규정으로 인해 추가 개선 기간을 주기 어려웠다는 시그널을 준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법원은 감마누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현재 거래소가 사실상 독점적 지위에 있어 거래소가 재량권이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상장폐지와 관련된 거래소의 상장 규정 및 하위 시행세칙은 내부적 기준에 불과해 그 자체가 거래소의 재량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손발 묶인 거래소 상장폐지 업무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판결이 향후 거래소의 상장폐지 업무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법원이 거래소가 상장폐지 결정 시 상장 규정이나 시행세칙을 넘어 더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거래소에 부담이 생겨서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감사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받아 형식적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한 후 부여받은 개선 기간 내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지 못한 경우에도 거래소는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시 상장법인이 상장폐지를 해소하지 못한 사유나 경위, 그 해소 가능성 등에 관해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심사해야한다”며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개선 기간이 종료된 후 상장폐지 결정을 함에 있어 기업심사위원회 개최 여부 및 그 시기, 심의 및 의결 여부 등을 시행세칙과 달리 정할 재량권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원은 판결문에 상장 규정이나 시행세칙의 특정 조항이 상장법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해 그 법률의 입법 목적이나 취지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조항은 위법해 무효라고도 명시했다.

그간 상장 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상장사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해오던 거래소로선 손발이 꽁꽁 묶인 셈이다. 

투자자보호 약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감마누 사례와 별도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상장폐지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신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는데, 이번 판결은 상장사의 이익만 광범위하게 보장한 셈이어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현재도 그렇고 향후에도 거래소 측은 규정에 따라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규정도 특별히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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