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이 여전히 21세기에도 읽혀지는 까닭
향유고래와 사투 벌인 ‘에이해브’ 선장의 리더십

<대한근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바다는 고난의 장소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먼바다는 온몸을 내맡겨 고난을 자청하는 곳이지만, 삶의 본질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노인은 그 바다에서 90여 일 만에 자신이 녹슬지 않은 어부임을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자신의 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잡아와서 증명해 보인다.

남북전쟁과 재건의 시대를 관통하며 변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통과한 19세기 미국의 정신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도 고난의 장소로서 바다가 언급된다.

흰색의 향유고래를 잡는 바다 사나이들의 이야기이니만큼 어쩌면 바다는 이 소설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바다는 고통과 공포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다. 폭풍우가 부는 바다를 그려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바다에 빗대 땅은 안락과 안전 그리고 정갈한 음식과 정돈된 잠자리 등이 주어지는 따뜻한 공간이다. 그리고 뱃사람들에게 그 바다와 땅의 경계인 곳에 항구가 자리한다.

멜빌은 이 소설에서 고단한 일상이 숨겨져 있는 난바다를 진리의 바다로 해석한다. 그래서 경계에 놓여 있는 항구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다.

돌풍이 불어닥친 항구, 그곳은 긴박한 위험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모든 돛을 펼쳐 온 힘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멜빌은 말한다.

항구가 제공하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구는 전환의 장소다. 뭍에서의 안락과 바다에서의 고통 그 사이에 존재하면서 피난처가 될 수도 있지만, 난바다로 나가는 통로가 돼 새로운 삶의 여정을 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구는 모호하다. 입구와 출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만큼 항구에 담겨 있는 감정도 양면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170년 전에 출간된 《모비 딕》을 읽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을 영화화한 65년작 영화 〈모비 딕〉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 우리가 아직도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설명한 바다와 땅에 대한 양가적 감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이 작품 말고도 지천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하게 《모비 딕》의 등장인물을 인용하면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야기의 전달자, 즉 거대한 향유고래와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와 《구약성경》의 〈욥기〉에서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린다”는 하인의 처지에서 고백하고 있는 이슈마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캐릭터는 향유고래 ‘모비 딕’과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 ‘에이해브’이다. 그리고 리더십과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인물은 바로 에이해브이다.

에이해브는 대학을 나왔고 식인종 사이에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기독교 세계의 이방인으로 그려져 있다.

경험치로 보면 극한의 가치를 모두 다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지구를 열 바퀴라도 돌아서 모비 딕을 찾아 복수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리더십은 파멸로 끝나고 만다. 태풍과 무풍지대를 방황했지만, 결국 뚝심 있게 목표를 잃지 않고 모비 딕을 찾아낸다.

그리고 사냥과 추적. 집요한 근성은 목전에 성공을 앞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에 반해 1등항해사 스타벅은 현실적이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태우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사리분별력이 분명하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무모한 도전 앞에 무너진다. 선상 반란을 생각해보지만, 그도 결국 에이해브와 같은 길을 걷고 만다.

텍스트로 만나는 그들의 리더십은 이처럼 비참하다. 그런데 앞서 바다에 대한 설명처럼 이 소설은 활자만 봐서는 안 되는 소설이다.

활자와 문맥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읽어내야 하는 글이다. 이 소설에서 멜빌은 내려놓음을 강조한다.

모비 딕 앞에서 모두가 패배자로 보이지만, 진리를 찾고자 가장 깊은 곳까지 마다치 않고 항해을 했고, 사냥에 나선 선원 모두의 행위에서 이 소설의 덕목을 찾아야 한다.

진리 혹은 진실은 고난과 역경 속에 있지만, 안락과 편안에 깃들어 있지 않다는 평범한 명제가 이 소설에서 읽어내야할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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