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 잃은 요구불예금, 한 달 새 16조↑
“대출 억제에 예대마진 개선 효과 떨어져”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계좌에 쌓이고 있는 요구불 예금에 은행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

자금조달 비용(금리)이 가장 낮은 저원가성의 요구불예금을 많이 예치할수록 예대마진율이 개선되지만, 대출 증가세를 관리하라는 당국 압박에 수익을 늘리지 못하고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요구불예금 잔액(저축성예금(MMDA) 제외)은 전월(536조6678억원) 대비 16조원 가량 증가한 552조586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488조5000억원) 축소 흐름을 보였던 요구불예금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이후 지난 6월까지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늘어난 요구불예금은 46조원에 이른다.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시대로 이자가 현저히 낮아지자 정기예금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자금을 은행 계좌에 쌓아 두고만 있는 이들이 늘어난 거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시 급반등 효과로 개인투자자의 주식 매수 열풍이 불었던 지난 7월10조8000억원가량 빠져나갔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최근 2달여 동안 다시 30조원가까이 늘어났다.

인출이 자유로운 대신 지급 이자가 0%대로 매우 낮아 원가 부담이 거의 없는 요구불예금은 은행이 확보하면 할수록 저원가성 수신 잔액 비중이 높아져 예대율 방어 및 예대마진 확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은행들은 최근 요구불예금 증가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저원가성 예금을 기반으로 대출을 집행해 수익을 늘려야 하지만, 경제 리스크 경감을 위한 대출 총량 관리에 나선 금융당국 등쌀에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은행들은 신용대출의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한도를 줄이는 등 자체적인 속도 조절에 나섰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은 전달보다 2조10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8월 증가분(4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요구불예금의 타 업종으로 이탈 방지를 위해 펀드판매에도 주력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각종 규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이슈로 은행의 펀드판매에 대한 판매고객의 불신이 높아진 데다 고난도 투자상품(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최대 원금손실가능비율이 20% 초과) 판매 규제로 영업에 제한이 생겼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통상 요구불예금 확대 추세는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이번만큼은 각종 규제와 사회적 분위기로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요구불예금은 잔액 상승분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사업 등 공격적인 자금 운용에 사용하기엔 안정적이지 못하다. 아깝지만 섣불리 건들기 힘든 자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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