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4 18:31 (화)
[응답하라 우리술 174] 노포 처음으로 막걸리 빚는 ‘역전회관’
[응답하라 우리술 174] 노포 처음으로 막걸리 빚는 ‘역전회관’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0.26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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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불고기, 낙지볶음에 잘 어울리는 ‘역전주’ 개발
100년 전 마포거리 술도가처럼 주막으로 전격 변신
▲90년 된 오랜 맛집 '역전회관'이 주막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노포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만들어 마포 시대를 새롭게 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3대째 대표 김도영씨와 4대째 신유정씨.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맛있어서 오래된 맛집, 그래서 대를 이어 음식을 내는 집을 흔히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1929년 순천에서 ‘호상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62년 서울로 입성, 용산역 앞에 자리를 잡았던 ‘역전회관’도 대표적인 오랜 맛집 중 한 곳이다. 

이 역전회관이 용산역 재개발로 옆 동네인 마포로 옮긴 지도 벌써 십수 년이 돼 가는 가운데, 90년 노포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놀라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00년 전 공덕과 마포의 거리를 채웠던 술도가의 풍모를 겸비하기 위해 소규모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고 자신들이 만든 막걸리와 약주를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오랜 맛집들이 음식에만 집중하는데, 이 집만큼은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면서 지역에 담긴 옛이야기를 되살려 자신들의 음식과 묶어내려한다. 

역전회관의 대표 음식은 기차를 타는 손님들의 옷에 혹여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 냄새가 밸까 고기를 바싹 구워내는 불고기다. 얇게 썬 소고기를 굽기보다 자작한 국물에 익혀 먹는 흔히 우리가 보는 서울식 불고기와 달리 이 집은 국물 없이 바싹 구워낸 것이다. 

여기에 남도식 음식들이 곁들여지는 이 집 음식 맛에 맞춰 3대째 대표인 김도영 씨(60)는 딸과 함께 드라이하면서 신맛으로 입맛 돋우는 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즉 단맛보다는 감칠맛이 우선하고 짠맛과 잘 어우러지는 신맛을 드러내 음식과의 페어링을 염두에 둔 술을 계획한 것이다. 

역전회관이 여타의 오랜 맛집과 달리 우리 술에 애정을 갖는 것은 4대째인 김 대표의 딸 신유정 씨(37)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이 집에서 내는 좋은 음식에 어울리는 우리 술이 절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술 편력은 우리술 교육기관인 ‘막걸리학교’에 이르게 했고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술을 만나게 된다. 

술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와 맛을 음식과 연결하면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 모녀는 막걸리학교는 물론 ‘가양주연구소’의 과정까지 섭렵하면서 양조 이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주류제조면허를 얻어 그해 11월부터 자신들의 술을 팔면서 100년 전 주막의 역사를 역전회관에서 되살리게 된다. 

면허를 취득하면서 이 집에서 판 술은 덧술을 한 번 더 하는 이양주 기법으로 만든 ‘역전주’(알코올 도수 9%, 막걸리)와 ‘역전한주’(알코올 도수 15%, 약주). 여기에 최근 자색고구마를 부재료로 넣어 붉은 색을 살린 ’자색고구마역전주‘를 보태 총 3종류의 술을 내고 있다. 

술맛은 첫 잔이 다음 잔을 자연스레 부르는 맛이다. 신맛이 먼저 다가오지만 단맛이 뒤따르며 발란스를 맞춰준다. 달고 짠 바싹불고기나 낙지볶음 등의 안주를 곁들이면 다시 다음 잔을 들어야 할 정도다. 알코올 도수 9도의 막걸리는 안주와의 조화로움이, 알코올 도수 12도의 약주는 맑은 빛깔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에서 맛을 보탠다. 허브향과 과일향이 술잔에 채워지고, 유기산의 상쾌한 맛이 생선회나 해산물 안주와도 최적의 조합일 듯 싶다. 

▲역전회관에서 빚는 술은 막걸리 '역전주'와 맑은 약주 '역전한주' 두 종류가 있으며, 자색고구마를 부재료로 사용한 막걸리 '자색고구마역전주'가 최근 추가됐다. 사진은 역전주와 역전한주, 그리고 역전회관의 시그니처 음식인 '바싹불고기'와 '낙지볶음'.

김도영 대표는 술맛을 위한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막걸리의 경우 술을 빚어 25일 정도 지나 채주를 한 뒤 이 술을 다시 저온에서 60일가량을 숙성한다. 대략 9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 손님의 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약주는 더하다. 술을 거른뒤 최소한 6개월 이상 숙성시키지 않으면 병에 담기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시간 속에 익어가는 술은 숙성 과정에서 다양한 맛을 만들어 낸다. 거친 유기산들은 다듬어지고 알코올 분자는 최대한 물 분자들과 조밀하게 결합한다. 그래서 감칠맛은 더 살아난다. 

음식으로도 이름을 얻은 오랜 맛집이면서 우리 술을 직접 빚는 것과 관련, 김 대표는 “노포지만 노력하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래야 역전회관에 올 이유가 또 하나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역전회관의 술을 맛봐야 할 이유가 역전주모를 자처하는 김 대표의 말속에 제대로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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