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시민에게 성공이란 ‘영웅적인 죽음’
성공신화 쓰려는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인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 김승호 편집위원> 우리는 누구나 성공신화를 그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 성공의 형태는 수많은 형상으로 나뉘겠지만 일반화시키면 부와 명예, 권력으로 모아진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진 않는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성공의 기준도 다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요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웅적인 죽음’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과정에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친구의 죽음에 파업을 중지하고 전투에 나섰으며 그리스 연합군 승리의 주역이 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트로이의 셋째 왕자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로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30대 나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해, 팔랑크스의 한 축을 지켜냈다. 팔랑크스는 중무장한 보병이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장창을 들고 고슴도치처럼 밀집대형을 구성해서 근접전에서 적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소크라테스의 용맹은 플라톤이 남긴 저작 《향연》에 알키비아데스의 증언으로 인용된다. 장군으로 참전했던 알키비아데스는 전투 중에 소크라테스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는데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용맹함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를 “무엇보다 그는 어려움을 참아내는 데 있어 나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강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한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도 영웅적인 죽음이 등장한다. 오이디푸스의 아들들이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권력을 얻은 크레온은 타국의 군대를 이끌고 내전을 이끈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지한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에게 장례는 무엇보다 중요한 죽은 자에 대한 예우였다.

《일리아스》에서 헥토르의 장례를 위해 트로이의 국왕이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 읍소한 까닭도 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권력자에게 항명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는 아테네의 아고라(광장)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되었을 것이다. 전쟁에 같이 참여한 시민들이, 즉 전우애로 똘똘 뭉쳐있던 전우들이 함께 모여 호메로스의 시나 소포클레스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를 맞아 올라간 《안티고네》의 공연장을 떠올려보자. 아테네 시민들은 공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들의 권력자와 함께 공연을 보면서 그들은 아마도 크레온의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해 동의하면서, 동시에 안티고네의 항변에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공동체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깊은 회한에 휩싸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공동체가 더욱 건강하게 지켜질 방법을 골똘히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물론 영웅적 죽음을 선택한 안티고네나 국가의 안녕을 위해 실정법을 지키려 했던 크레온, 그 둘이 맞이한 충격적인 결말을 보고 그들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의사결정의 최후가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을 것이다. 

성공신화를 쓰려는 현대인들에게 《안티고네》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맹목적인 물신성의 결과는 잔혹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화려한 불빛에 유혹당하는 의지박약한 인간이기에 알키비아데스가 그토록 찬양했던 ‘테스형’처럼 더 강건해질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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