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위험 사전 예방해 의료비 절감하고 수익성 개선
“의료법 위반 리스크 여전히 커, 법 모호성 제거해야”

(사진=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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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면 중심의 보험산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다만 건강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늘어난 점은 보험사에 긍정적 요인이다. 보험사들은 이 점에 주목해 사후보장보다 사고율 자체를 줄이는 사전예방 형태의 건강관리 사업에 주목한다. 보험가입자의 질병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면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할 수 있고 가입자는 건강을 유지해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본지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그간의 헬스케어 관련 규제 변화와 해외사례를 통해 국내 보험사들이 나아갈 방향을 전망해 본다.

<대한금융신문=문지현 기자> 보험업은 건강과 가장 밀접한 산업 중 하나다. 개인의 건강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보험사들은 수년 전부터 헬스케어 사업에 발을 들였다. 보험사가 통계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기대 수명’보다 헬스케어 사업을 통해 수집한 ‘건강 수명’의 통계적 가치가 커질수록 보험사는 사망 및 질병보험에서 좀 더 정교한 보험료 산출이 가능해지고, 고객의 질병발생 위험을 줄여 보험금 지급을 줄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보험사는 헬스케어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7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코로나19 시대 위협요인 중 하나로 보험수요 감소를 꼽았다. 반대로 기회요인 중 하나로는 헬스케어 등 신사업 진출 가능성 확대를 선택한 바 있다.

언택트(비대면) 소비문화를 앞당긴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설계사 중심인 보험산업이 타격을 받을 영향이 커졌지만, 건강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커진 만큼 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험업 측면에서 헬스케어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현재 보험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예방적 건강관리 서비스’의 활성화다. 보험사들은 그간 미래 새 먹거리 선점을 위해 건강관리와 관련한 서비스 제공 및 상품 개발에 머리를 굴려왔다.

다만 보험사들이 진행해온 예방적 건강관리 서비스를 살펴보면 아직 그 성과는 제한적이다. 하루 걸음 수를 포인트로 환산해주는 금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자사 계약자에게 전문의료진 상담 서비스, 식단관리 등 수동적 비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온 게 예다.

그 이유는 현행 의료법 체계에 있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닌 자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보험사가  의료행위를 제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게다가 건강관리 서비스는 영리 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될 수 있다.

의료법은 ‘의료행위’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의료행위의 판단 기준과 구체적인 내용은 대법원 판례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비의료기관의 건강관리 서비스가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이라 보험사들은 차별화된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보험업법상 특별이익 제공이 금지된다는 점도 헬스케어 사업의 저해 요소로 작용해왔다.

보험회사나 모집종사자는 보험계약을 체결·모집할 때 보험계약자 등에게 특별이익을 제공할 수 없으며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과당경쟁으로 재무건전성이 훼손되거나 보험계약자 간 평등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어서다. 보험사의 특별이익 유형은 그간 법원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폭넓게 인정된다는 특징이 있어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건강관리 기기를 지급하기 어렵다.

고령화 맞은 日·美, 헬스케어 선제 대응

해외의 경우 의료비 절감 측면에서 정부 주도로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해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고령사회를 맞은 일본 보험사의 사례를 살펴보면 정부 차원에서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주우생명은 건강관리 서비스 전문업체인 디스커버리와 통신업체인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건강 상태를 보험료에 반영하는 건강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제일생명은 경제산업성과 교토대학교, 일본 IBM과 제휴해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토대 의과대학의 생활습관병 환자에 대한 진료기록을 분석해 이를 일본 IBM이 AI 기반 예측시스템을 활용해 새로운 건강보험상품이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 보험사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으로 사전적 리스크 예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1위 건강 보험사 유나이티드 헬스 케어(UHC)는 애플의 건강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헬스키트(Healthkit)를 통해 보험 가입자들에게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UHC사는 의료와 비의료가 결합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보험 손해율 경감과 함께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치솟는 의료비에 정부도 적극적

우리나라도 매년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사회보장정책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 비중이 8.1%로 OECD 평균 8.8%보다 낮으나 증가속도는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도 고령화에 따른 국민의료비 부담 완화 측면에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보험사의 건강관리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비의료기관의 의료법 저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보험사와 같은 비의료기관도 개인의 건강정보 확인 및 점검과 비의료적 상담과 조언 등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심박 수·수면패턴 측정, 식품 영양소 분석, 건강나이 산출, 병원 내원일 알람, 생활습관 개선 상담 등이다.

금융당국도 그해 7월 복지부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에 맞춰 보헙업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개선했다. 대표적으로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보험 편익에 건강관리 기기를 추가했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만보기나 혈당측정기, 구강 세균측정기 등은 보험업법상 ‘특별이익’에 해당되지 않는 거다. 건강 증진 효과를 통계적으로 입증할 기기 중 ‘초년도 부가 보험료의 50%’와 10만원 중 더 적은 금액이면 모두 제공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건강관리 서비스의 장벽으로 꼽혀온 정보 활용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됐다. 그간 신용정보법상 보험사들은 질병정보를 ‘보험업’ 외의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었다.

올해 8월 시행된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보험사는 개인의 질병이나 상해정보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정보를 보험업 외에도 부수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부수업무 중에서도 개인의 건강 유지·증진 또는 질병의 사전예방 및 악화 방지 등의 목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해당한다. 현재 보험사들은 건강관리 서비스업을 부수업무로 영위할 수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법·제도 모호성 해소가 지속적으로 수반돼야 하고, 보험사도 위험인수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험연구원 정성희 실장은 “복지부가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으나 비의료기관이 건강검진 결과 등을 토대로 건강상태 평가 및 발병위험도 예측서비스 제공 시 의료법 위반소지 등 의료영역으로 간주되는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다”라며 “비의료기관의 헬스케어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법·제도의 모호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뉴딜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험사도 전통적 보험상품에 헬스케어 서비스를 연계해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위험인수자로의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건강 증진·질병예방 사업에 민간파트너로서 참여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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