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17:45 (수)
[문화탐방 응답하라 우리술 175] 안동 군자마을 설월당 음식과 술
[문화탐방 응답하라 우리술 175] 안동 군자마을 설월당 음식과 술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1.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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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잡방》 종가 설월당 김도은 종부의 술과 음식 이야기
“집안에 향기 그치지 않은 술은 이황도 즐긴 ‘만전향주’“
안동 군자마을 설월당 종부인 김도은씨가 1540년경에 쓰인 ‘수운잡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반가의 ‘봉제사접빈객’을 위한 음식이 실려 있으며 특히 절반 이상이 술을 만드는 법으로 채워져 있다.
안동 군자마을 설월당 종부인 김도은씨가 1540년경에 쓰인 ‘수운잡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반가의 ‘봉제사접빈객’을 위한 음식이 실려 있으며 특히 절반 이상이 술을 만드는 법으로 채워져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가을에 물든 안동 군자마을. 붉게 물든 단풍과 광산 김씨 예안파의 종택은 안동호를 끼고 봉화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선비길만큼 잘 어우러져 아름답기만 하다.

이곳 군자마을에서 종가의 술과 음식, 그리고 식초를 지켜나가는 설월당 종택의 김도은(60) 종부를 만났다.

설월당은 탁청정 김유의 막내아들 김부륜의 호다. 김유(1481~1555)는 고조리서인 《수운잡방》을 집필한 조선 중기의 선비.

‘군자는 먹는 것에서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곳에서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는 논어의 구절이 엄격하게 지켜지던 시절, 탁청정 김유는 집안의 술과 음식의 조리법을 모아낸다.

김유가 정리한 조리 방법은 술 제조법 42가지와 식초 6가지 등을 포함한 86가지. 남자의 손에서 출발해서일까.

술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술로 만들어지는 식초 제조법도 제법 된다. 이 밖에 김치와 장류 제조법 등 종갓집에서 많이 사용한 음식 제조 및 보관 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렇게 탁청정 김유의 손에서 시작된 《수운잡방》은 설월당 김부륜의 아들 계암 김령(1577~1641)의 손에서 35가지의 조리법이 추가돼, 선비 집안에 필요한 음식과 술, 식초를 망라하는 음식 조리서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종부 김도은씨의 손에서 광산 김씨 예안파 가문의 범주를 넘어서 안동 음식 문화의 전형으로 자리하게 된다.

1611년에 쓰인 허균(1569~1618)의 《도문대작》이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라면, 1540년쯤에 쓰인 것으로 추정하는 《수운잡방》은 집안을 찾는 손님을 접대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선비가 직접 작성한 최초의 음식 조리서로서 당대 사회에 파격을 준 책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의 호불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것을 꺼렸던 사회에서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집안의 실용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자가 안동을 찾은 지난 주말 설월당 김도은 종부는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수운잡방전통음식체험관’에서 접빈객을 위한 술과 음식을 준비해 서둘러 군자마을 설월당으로 올라왔다.

이유는 “음식과 술은 집과 사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관장은 “체험관에서 편하게 음식과 술을 시음할 수도 있지만, 우리 음식은 특히 한옥에서 즐길 때 제맛과 운치를 느낄 수 있다”며 자신의 수고로움을 풀어 설명해 줬다.

수운잡방에는 총 59가지의 술이 등장하는데, 이날 종부의 손에 들려온 술은 ‘만전향주’와 ‘타락’ 두 가지였다. 두 술 모두 익숙하지 않은 술이지만, 집안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상 속의 술들이란다.

‘봉제사접빈객’ 위해 선비가 쓴 최초의 음식서 《수운잡방》
“없는 것 쓴 게 아니라 있는 반가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것”

설월당 김도은 종부가 접빈객을 위해 마련한 주안상이다. 술은 우유로 만든 ‘타락’과 향기가 좋은 ‘만전향주’(주전자)가 있고 음식은 ‘삼색어아탕’과 ‘향과저’, ‘전계아’ 등이 있다.
설월당 김도은 종부가 접빈객을 위해 마련한 주안상이다. 술은 우유로 만든 ‘타락’과 향기가 좋은 ‘만전향주’(주전자)가 있고 음식은 ‘삼색어아탕’과 ‘향과저’, ‘전계아’ 등이 있다.

먼저 상에 오른 술은 만전향주(滿殿香酒). 술 이름에서 향기가 가득하다. ‘집안에 술 향기가 가득찬다’는 의미를 지닌 술이니 오죽할까. 그런데 살짝 넘긴 한 모금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감초 향이 가장 먼저 올라오고 연하게 다른 약재의 향기가 균형감 있게 밀려온다. 종부의 말로는 아직 다 익지 않았다고 하지만, 향기와 목을 넘어가는 술의 맛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맛이다.

퇴계 이황이 탁청정 김유의 묘지명에 “주방에는 진미가 쌓여있고,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항상 넘치도다”라고 적었다는데, 종부의 말로는 이 술을 이르는 글귀란다.

“단맛이 강한 술일수록 향이 강한데, 감초는 향이 먼저 휘발된다”며 “그래서 술 향기가 집안에 가득했을 것”이라고 종부는 부연한다. 그리고 광산 김씨의 집안사람들도 이 술을 가장 좋아해 집에서 이 술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이어 내놓은 술은 타락(駝酪). 흔히 알고 있는 타락은 우유를 말한다. 이를 죽으로 끓어 먹곤 했지만 조선시대엔 무척 귀해 임금과 특수계층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다.

종부가 주는 타락은 걸쭉한 모양새가 마치 이화주 같았다. 하지만 우유로 만들었다며 플레인 요구르트 같은 술이라고 설명한다.

《수운잡방》에 따르면 타락은 우유에 막걸리(혹은 식초)를 넣어 발효를 시킨다. 그래서 시큼하면서 단맛과 고소한 맛이 같이 따라온다.

맛은 고소함이 배가된 이화주 같다. 이 술 또한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맛이다.

김도은 종부의 설명에 따르면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고 난 뒤 종부를 비롯해 여인네들이 지치기 십상인데, 그럴 때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원기를 보충했던 술이란다.

이 술과 함께 내온 음식은 청포묵에 치자와 녹차, 맨드라미 등으로 물을 들여 은어 육수를 부어 만든 ‘삼색어아탕’과 저민 생강 등을 볶아 오이 위에 올린 뒤 발효를 시킨 ‘향과저’, 안동찜닭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계아’ 등이다.

모두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았고, 간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향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음식이 술의 향을 해치지 않는다. 음식은 술이 지닌 알코올을 보완해줄 뿐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왜 《수운잡방》을 강조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맛이었다.

수시로 있는 제사때 ‘만전향주’를 사용하냐는 질문에 종부는 설월당의 제사는 ‘오정주’로 치른다고 말한다. 목련꽃, 참외, 목향 등의 여러 약재를 넣어 빚는 술이다.

그런 까닭에 《수운잡방》에는 빠르게 술을 쓸 수 있는 일일주와 삼일주 등의 술도 있고, 술 빚기 힘든 여름철에도 안전하게 술을 양조할 수 있는 주방문(하일청주, 하일점주 등)도 제법 등장한다.

이처럼 봉제사 접빈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조리법을 정리한 것이 《수운잡방》인 것이다.

김도은 종부는 “《수운잡방》은 없는 음식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있는 음식을 반상가의 입장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술과 음식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종부는 “술은 그 집 음식에 맞춰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먹는 사람을 고려한 뒤 술을 만들어야 제대로 된 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술만 바라보면서 음식과의 궁합을 찾으려는 요즘 세대들에게 음식과 술을 같이 바라봐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당부하는 말이었다.

음식·숙박 겸하는 《수운잡방》 안동 여행

안동 군자마을에 위치한 설월당 전경. 설월당은 탁청정 김유의 셋째아들인 김부륜의 호이자 당호이다.
안동 군자마을에 위치한 설월당 전경. 설월당은 탁청정 김유의 셋째아들인 김부륜의 호이자 당호이다.

미슐랭 가이드 별점 받은 35번 도로변에 위치
‘탁청정’·‘설월당’ 서 있는 곳이 경치이자 풍경

미슐랭 가이드가 국내 도로 중 별점을 준 도로가 있다. 안동호를 끼고 있는 도산서원부터 태백 초입까지의 75km 구간의 35번 국도다.

안동호가 시작되는 곳 즈음에 군자마을이 자리한다. 낮은 등성이를 따라 광산 김씨 종택이 셋 자리하고 있다. 후조당, 탁청정, 설월당이 바로 그 셋이다.

김유의 호이기도 한 탁청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칸수로는 직사각형 구조일 듯 하지만 측면 2칸의 길이가 길어서 정사각형처럼 느껴진다.

넓은 마루는 10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구조이다. ‘탁청정’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이라고 한다.

설월당은 김유의 아들 김부륜의 호이자 당호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눈 쌓인 군자마을에서 달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탁월했던 듯하다.

설월당 아래쪽으로 계암 종택이 양지바르게 앉아있다. 서 있는 곳이 경치이자 풍경이다.

군자마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수운잡방 전통음식 체험관’에서 김도은 종부가 마련하는 음식 체험을 한 뒤 군자마을의 고택에서 숙박하는 것이다.

안동호와 청량산 등의 풍광은 깊어가는 계절만큼 새겨질 것이다. 35번 국도를 따라 인근에 있는 도산서원과 농암종택 등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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