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독립보험대리점(GA) 채널이 보험 유통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영업 환경이 위축됐음에도 GA채널은 비대면채널(TM·CM)과 달리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보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GA채널의 성장으로 인한 보험산업의 변화와 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살펴본다.

공룡된 GA...보험사 M/S에도 영향

보험 판매채널인 독립법인대리점(GA)들이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웬만한 중소형 보험사만큼 덩치가 커지면서, 이제는 보험사 시장점유율에 영향을 주는 ‘공룡’으로 부상했다.

GA는 자사의 상품만을 판매하는 보험사 소속 설계사와 다르게 계약된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고, 보험사로부터 수수료와 시책(인센티브)을 받는 설계사 조직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험설계사는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설계사’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약 3만명으로 국내 전체 보험설계사의 10% 미만이었던 GA 소속 설계사는 2016년 말 20만8462명으로 늘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전속설계사 수의 합계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엔 23만2770명까지 설계사 규모가 커졌다. 같은 기간 전속설계사(18만6922명)보다 25% 많다.

GA의 영향력은 매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형 GA의 수수료 수입은 전년 대비 20.8 % 급증한 7조4302억원으로 집계됐다. 7조원을 넘긴 건 역대 처음 있는 일이다.

중·대형 GA의 수수료 수입은 지난 2017년 5조1809억원, 2018년 6조1537억원, 지난해 7조4324억원 등 해마다 1조원 규모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GA의 신계약 체결 건수는 전년대비 14.3% 증가한 1461만건에 달했다.

코스피 입성 성공...성장가능성 높아

이 같은 기대감에 최근 대형GA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투자자 관심을 받으며 단순 보험대리점 위상을 뛰어넘고 있다.

최근 국내 10위권 GA인 피플라이프는 미국에 본사를 둔 코스톤캐피털에서 총 7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에이플러스에셋은 업계 최초로 코스피 상장에 성공하기도 했다. 인카금융서비스, 리치앤코 등 다른 대형 GA들도 기업공개(IPO)와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 GA에 대한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초회 보험료 기준 국내 보험사의 GA채널 판매 의존도는 40%선으로 아직 미국과 영국의 GA 채널 판매 의존도(각각 80%, 70%) 대비 낮다.

또 GA는 별도의 자본규제 없이 판매책임만 보유한다. 매출액 대부분이 보험사로부터 받은 수수료와 시책으로 구성돼 있어 장기간 보험계약에 따른 부채부담이 없다.

반면 보험사의 경우 보험모집을 하면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보험금 지급을 위한 부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보험 계약이 많은 보험사일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역마진 부담이 있다.

저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일수록 금융당국은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하도록 유도한다. 향후 도입될 국제회계기준(IFRS17)과 동시 시행되는 자본건전성규제(K-ICS) 등이 그 예다.

느슨한 규제에 내부통제 허점도

보험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GA들이 꾸준히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이유는 보험사와 비교해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보험업계에선 GA채널을 통한 불완전판매가 만연하다는 우려도 있다.

시책에 눈이 먼 GA가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거나 허위로 안내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김동겸 수석연구원은 “보험 모집 과정에서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판매촉진비의 급격한 증가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GA의 불완전판매 사례는 끊임 없이 적발되고 있다. 최근 몇 달간 불완전판매로 금감원의 징계를 받은 GA만 8곳에 달한다. 제재를 받은 GA는 소속 설계사 500명 이상의 대형사 2곳(케이지에이에셋·씨제이이엔엠)과 중소형사 등 규모별로 다양했다.

GA들은 TV와 인터넷 등에 보험 리모델링, 무료 재무상담 등을 내걸면서 상담 시에는 광고와 다르게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불법 유사수신행위가 적발된 GA도 나왔다. 경기도 부천 소재 엑시스금융서비스 A 대표는 지난 9월 불법유사수신행위 등으로 경찰에 구속됐다. A씨는 연 12% 고수익을 보장하며 보험계약자의 돈을 일시금으로 받은 뒤 상품판매수당 등을 이자 형식으로 나눠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피해자는 1500여명, 피해액은 1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GA의 불완전판매가 지속해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데는 아직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영향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소속 설계사 100인 미만인 소형 GA에 대한 감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GA 수는 4477개에 달한다. 이 중 설계사 100인 미만 소형 GA는 전체의 95%인 4290개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이 발송한 4500여개 GA에 경영공시 안내문 등기우편 가운데 2300여개가 반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GA 중심 ‘옥석가리기’ 본격화

업계는 대형 GA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를 기점으로 GA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시각이다.

내년 보험업계는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초년도 수수료를 제한하는 ‘1200%룰’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GA의 자본부담이 커지는 고용보험 의무화도 정부 여당 주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당국이 GA의 영업 전반을 들여다보는 검사에 나서는 등 육성에서 규제 중심으로 검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대형 GA에 대한 준법감시의무 등도 계속 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역시 시장 재편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GA가 모집을 하면서 계약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보험사가 GA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지만, 갑의 위치에 오른 GA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쉽지 않다.

보험사 요구대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 책임을 GA도 지게 된다면 내부통제 역량을 갖추지 못한 GA들은 시장에서 퇴출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자본력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춘 GA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고강도 규제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GA만 살아남을 것이란 예상에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GA채널의 불완전판매와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보험산업의 신뢰 저하 문제가 지적되고 있어, 대형 GA에 대한 판매자책임 규제 등이 강화되고 있다”라며 “강화된 내부통제를 갖춘 대형 GA 중심으로 시장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불건전영업의 온상으로 치부됐던 GA시장이 새롭게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