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강조한 여신지원 등 공적 기능 강화 필요
스페인독감 사례 향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백신 개발 소식이 이어 달리고는 있지만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2020년 겨울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뒤섞여 지면을 메우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는 가운데 포스트 팬데믹에 대한 적극적인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팬데믹 현상의 핵심은 보건 측면에서 국민의 생명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피부에 와닿는 실생활의 위협요인은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불균형의 심화다.

각국의 경제가 정부의 재정지출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만 겨우 맥박이라도 잡힐 만큼 극심한 경기 후퇴를 보이는 상황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겪는 경제적 애로도 큰 문제겠지만 코로나가 진정된 뒤에도 팬데믹 기간에 발생한 경제 왜곡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JTBC 채널의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한 서울대 경제학과 홍석철 교수는 110년 전에 경험했던 스페인 독감을 사례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인구통계학적인 대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스페인 독감 시절 출생자들의 대상으로 한 미국 컬럼비아대학 더글라스 아몬드 교수의 연구를 인용했는데, 미국에서 1919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평균 교육연수가 이전 세대보다 1.5개월 정도 감소했고, 고교 졸업 비율도 15% 정도 낮아졌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균임금도 1919년생이 여타 출생연도 사람들보다 5~9% 정도 낮게 나왔다.

홍 교수는 같은 시기의 일제강점기를 대상으로 한 자신의 연구에서도 ‘무오년(1918년) 독감’ 다음 해에 출생한 사람들이 평균 4개월 정도 교육연수가 줄었다며, 당시 조선인의 평균 교육연수가 3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교육 손실이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인구통계학적 측면에서의 경제 현상은 국가가 정책 수단을 마련해서 대처해야겠지만, 금융권에서도 포스트 팬데믹 세대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준비하는데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건강경제학적 측면 이외에도 포스트 팬데믹에 관한 과제는 다양하다. 그중 특이한 보고는 ‘포린어페어스’지 11/12월호에 게재된 마리아나 마주카토 런던대(UCL) 교수의 기고다.

마리아나 마주카토 교수는 연전에 《모든 것의 가치》라는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의 폐해를 지적하며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경제학자다.

같은 맥락에서 팬데믹 사태를 새로운 경제시스템 도입의 호기로 지적한 마리아나 마주카토는 공공과 민간이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이번에 만들어내자며 정부의 공공지출의 방법부터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우선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3조달러 정도의 재정지출이 이뤄졌지만, 불균형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대기업과 금융사들만 배를 불려줬다며 이번에는 가치문제를 재정립하고 자원 배분 원칙도 바로 세워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부 금융사와 기업만이 아니라, 국민들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경제운용 원칙을 바꾸자고 말한다.

특히 자원배분과 관련해서, 공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사회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구제금융을 시행해야 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거나 조세회피처에서 세금을 회피하는 기업에의 지원 거부를 강조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오랫동안 위험을 사회화했지만, 경제가 회복한 후 보상은 철저히 사유화했는데 더는 그러지 말라고 주문한다.

난장판이 된 경제를 정리할 때는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면서 정작 위기를 극복한 뒤 결실을 나누는 과정에선 더는 세금을 내는 주체들이 소외돼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전면적으로 수용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닌 듯싶다. 우선 팬데믹의 후폭풍이 그 어느 경제위기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대 시중은행 경영진에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 등 경영난 해소 차원에서 시중은행들이 이자부담 등을 줄여줄 것을 주문했다.

3분기까지의 금융사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줄긴 했어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농어민, 그리고 소상공인들보다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금융사의 공공성이 강조돼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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