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서사구조에 담아낸 신한 2021년 전략 메시지
지주사 임원에 ‘불확실성의 시대’ 헤쳐갈 방법론 제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제갈공명의 묘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전쟁에 나가 패한 적군의 퇴로까지 예측해 아군을 매복시키고, 불지 않던 동남풍을 제사로 일으켜 마치 천기를 운영하는 것처럼 보여 적과 아군 모두를 놀라게 한 동아시아 최고의 전략가. 그 덕분에 《삼국지연의》의 인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그런데 이런 전략가는 현실에서 만날 수는 없다. 돌발변수로 가득 찬 전쟁에서 미리 수를 읽어 대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위해 띄워 보낸 오나라 배가 사고로 침몰할 수도 있으며, 매복시킨 아군의 진영으로 산사태가 나거나 예측한 퇴로와 다른 방향으로 적군이 철수했다면, 《삼국지연의》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아예 이 이야기는 동아시아인 모두가 공감하는 소설로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의 한 수처럼 매 순간 제갈공명의 예지력이 들어맞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어디 전쟁뿐이라다. 현실도 돌발상황으로 가득 차 있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설처럼 전략이 들어맞는 경우도, 그렇게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오늘을 상기해보자.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사회경제적 질서의 변화,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및 인공지능 및 모바일 관련 기술에 의한 비즈니스 재구조화 등의 요소는 하나같이 모두 돌발적 상황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최대 요인을 ‘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전쟁 수행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책에서 갑자기 ‘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불확실성과 우연, 그리고 마찰과 운을 전쟁의 특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클라우제비츠가 운에 기대서 돌발상황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준비돼 있지 않으면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고 말한다. 손자의 《손자병법》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아군의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그의 전쟁에 대한 철학은 결국 세계인들이 읽으려 하는 최고의 전략교과서가 됐다.

조병용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2021년 해법도 《손자병법》인듯하다. 신년사의 인용구도 그렇고 지난주 ‘신한금융포럼’에서의 발제도 그렇다.

신년사에서 인용한 병형상수(兵形象水)는 《손자병법》 ‘허실편’에 등장하는 글이다. 전쟁에 임하는 군대는 물을 닮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처럼 빠르고 유연해야 하는 의미의 이 문장을 조 회장은 돌발변수로 가득한 환경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한금융포럼’에서는 보다 구체적이다. 혼란과 혼동이 가중되고 있는 복잡성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손자병법》의 내용으로 큰 틀을 제시하고 있다.

‘계모형세(計謨形勢)’. 이는 《손자병법》에서 손자가 말하는 핵심 장들의 제목을 모은 단어다. 전체 13편 중 ‘작전’을 뺀 초반 5편을 사자성어처럼 모아 조 회장의 메시지를 녹인 것이다.

‘계’는 명료한 전략을, ‘모’는 조직의 살아갈 수 있는 전술을, ‘형’은 이기기 위한 조직 구성을, 마지막으로 ‘세’는 실행력을 위한 리더십을 의미한다.

이는 손자가 《손자병법》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과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한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지주사 전체가 살아남고 지속 가능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손자의 서사구조를 빌어와 더 큰 의미로 전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모형세에 담긴 메시지는 좀더 매력적으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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