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4 14:55 (목)
[응답하라, 우리술184] 위스키에 화양연화 모두 건 김창수 대표
[응답하라, 우리술184] 위스키에 화양연화 모두 건 김창수 대표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1.25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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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102곳 증류소 탐방, 치치부서 위스키 배워
올 1월부터 위스키 증류 시작, 내년 봄 제품 출시 예정
20~30대의 화양연화와 같은 시간을 위스키에 천착해 한국산 위스키를 모든 것을 투자한 김창수 대표가 자신이 직접 조립한 증류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30대의 화양연화와 같은 시간을 위스키에 천착해 한국산 위스키를 모든 것을 투자한 김창수 대표가 자신이 직접 조립한 증류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삶이 위스키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위스키가 좋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102곳을 빠짐없이 주유하고, 생계와 업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외국계 주류회사와 위스키 수입사에서 일하다, 여의도에 위스키 마니아들의 성지 같은 ‘바’를 운영하고 결국 올해 들어 자신의 위스키 증류소를 연 젊은 양조인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계에 내놓을 만한 국산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나선 김창수(36) 씨가 그 주인공이다.

수도권 지역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였던 이달 중순, ‘김창수위스키증류소’를 찾았다.

지난해 6월부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증류기를 조립하면서 증류소를 만들기 시작해 올 1월 본격적인 위스키 양조를 시작한 김창수 대표.

그가 꺼내놓은 위스키 천착기를 듣다 보면, 그에게 위스키는 화양연화와 동고동락한 친구이자 애인처럼 느껴진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해 설비 영업을 했다는 김 대표. 그런데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미래의 직업으로 술을 만드는 양조인을 꿈꾼다.

박록담 선생의 전통주 관련 책을 읽으며 술을 빚기 시작한 삶은 와인과 칵테일로 이어졌으며 결국 위스키에 꽂히게 된다. 위스키가 지닌 향과 맛의 퍼포먼스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처음 위스키가 좋아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5년이 지난 2013년, 그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바로 알려진 ‘볼트(한남동 소재)’를 찾는다. 손님이 아닌 바텐더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위스키업계에서 일할수록 본향 ‘스코틀랜드’가 떠올랐다는 김 대표.

위스키 양조를 교육받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했지만,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흔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을 택한다.

지난 2014년 봄과 여름, 넉 달이 넘는 동안 당시 스코틀랜드에 있는 102곳의 증류소를 일일이 두드린 김 대표.

하지만 김 대표는 취업비자도 없는 데다, 양조를 할 수 있을 만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낯선 동양인에게 스코틀랜드 증류소 사람들이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당시를 소회한다.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기행을 갔던 20세기말과 21세기 두 번째 10년기의 스코틀랜드 증류소의 분위기는 하늘과 땅처럼 크게 변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중심의 위스키 문법을 허물고, 경계를 넓히겠다는 김창수 대표는 한국산 오크 등 다양한 실험을 펼칠 예정이다. 사진은 위스키가 익어갈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셰리오크통.
스코틀랜드 중심의 위스키 문법을 허물고, 경계를 넓히겠다는 김창수 대표는 한국산 오크 등 다양한 실험을 펼칠 예정이다. 사진은 위스키가 익어갈 김창수위스키증류소의 셰리오크통.

102곳의 증류소 중 3분의 2는 다국적 대기업의 소유였으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대량 생산을 위한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돼, 극소수의 인원이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게 돼 있는 것 같다. 스코틀랜드의 모든 증류소 탐방을 마친 날 저녁, 김 대표는 글래스고의 한 바에서 일본 치치부증류소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치치부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지난 2008년부터 위스키 양조에 들어간 신생 증류소지만 현재는 위스키를 구하지 못할 만큼 급부상한 곳.

이것이 인연이 돼 그는 치치부에서 열흘간 연수를 받게 되고 동행 취재한 NHK에 그의 위스키 도전기가 방영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의 연수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한다.

치치부증류소처럼 자신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위스키를 만들어야 했기에, 경험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는 것.

이제 남은 것은 증류소를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6년의 세월을 들여 위스키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돈과 사람을 모아나간다.

그리고 올해 김창수 위스키증류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세계가 인정할 위스키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우리 재료를 사용한 위스키도 동시에 만들 계획이다.

특히 스코틀랜드가 세운 높은 벽처럼 공고한 위스키업계의 고정관념과 싸워가면서 위스키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6줄 보리와 오크 발효조, 숙성 시간 등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은 영역을 의도적으로 건드려 업계의 통설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창수 대표가 내년 봄에 내놓을 위스키에 더 눈길이 간다.

엿기름으로 만들어 6개월가량 숙성한 그의 실험작과 증류소주와 블랜딩한 위스키를 시음하면서 그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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