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뇌질환 등 인기 담보에 한시적 할인 적용
실손보험료 인하 규정 이용, 금감원 눈 피해
“저해지에도 적용 추세…가격경쟁 심화될 것”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손해보험사들이 암이나 뇌질환 등 인기 질병담보의 보험료를 한시적으로 깎아주는 ‘꼼수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다. 과도한 보험료 할인이 보험사간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은 지난 2019년 6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약 1년 4개월간 뇌혈관질환 진단비 담보의 보험료를 남녀 각각 20%, 5%씩 할인 판매했다.

할인은 ‘보험료 안정화 할인’이라는 제도성 특약을 KB손보의 주력 건강보험 상품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당 기간 동안 할인율은 동일했지만, 적용되는 상품은 계속 변경됐다. 주로 ‘KB YES!365건강보험’, ‘KB 닥터플러스건강보험’ 등 주력 건강보험에 적용됐는데, 일정 기간 동안 판매고를 높일 목적으로 인기 담보인 뇌혈관질환의 보험료를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메리츠화재와 흥국화재도 비슷한 방식으로 한시적 할인행사를 벌였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암진단비를 남녀 각각 15%씩 깎아주고 있다. 흥국화재는 지난 2019년 11~12월과 지난해 1~3월 뇌혈관질환 진단비를 남녀 각각 15%, 10%씩 할인해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변칙적인 할인행사를 통해 보험사간 출혈경쟁이 발생했다고 본다.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깎아주는데 사용한 재원은 사업비다. 사업비는 신계약비(설계사 수수료)와 유지비 등으로 구성되는데 할인은 보험사의 운영재원인 유지비로 충당됐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제7-55조)에서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순보험료를 제외한 범위 안에서 보험료를 할인해줄 수 있다. 보험료는 순보험료와 사업비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사업비를 재원으로 보험료를 낮추는 건 금융감독원 신고 없이 보험사 마음대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보험료 안정화 할인 특약이 보험사간 제살깎이식 경쟁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보험료 안정화 할인은 정부가 실손의료보험 인상률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약이다.

실손보험은 4000만명 가까이 가입해 ‘제2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상품이다. 보험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내는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싶어 하지만 정부는 매해 가격을 통제해왔다. 과도한 보험료 인상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다. 

실손보험에 보험료 안정화 할인이 적용되는 경우는 이렇다. 보험사가 전년도 손해율 등을 반영해 다음해 실손보험을 20% 올리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해도, 정부가 10% 인상으로 가격을 통제하면 10%밖에 인상하지 못한다. 

이에 보험사는 미처 올리지 못한 10%를 사업비 한도 내에서 보험료 안정화 할인특약이라는 명목으로 할인해준다. 보험료 인상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근거를 남기는 셈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가 실손보험에 적용되는 보험료 할인의 근거를 이용해 세일 행사를 벌여온 것”이라며 “사업비는 전체 영업보험료의 절반까지도 부과된다. 적정 수준의 사업비를 적용해왔는지 의심되는 정황”이라고 말했다.

보험가입자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안정화 할인은 특정기간 동안 보험사의 주력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특정 담보의 보험료는 이전까지의 경험통계를 바탕으로 조정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만약 뇌혈관질환 담보에 가입한 사람들의 보험금 지급이 적었다면 위험률 조정을 통해 보험료를 낮추는 식이다. 이 경우 변경시점부터 모든 가입자에게 공통 적용된다. 한시적 보험료 할인을 소비자 혜택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안정화 할인이 특정 담보뿐만 아니라 저해지환급형 보험상품 전체의 보험료를 깎아주는데도 사용되고 있다”라며 “향후 손보사간 가격경쟁이 심화될 경우 사업비 출혈경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2년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을 발표하고, 보험업감독규정 안에 보험료에서 사업비 일부를 인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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