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개설 사유서 ‘암호화폐 거래’ 배제
목적확인 취지훼손 vs 소비자보호 차원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계좌개설 시 은행들이 급여수령 등 거짓 목적을 제시하도록 요구해 문제가 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빗썸, 코인원, 업비트, 코빗 등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는 각각 시중은행 1곳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제휴를 맺고 있다.

암호화폐가 자금세탁 용도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난 2018년 도입한 암호화폐 거래실명제를 따른 거다. 내달부터는 해당 제도이행 여부를 암호화폐 사업자 신고 요건에 담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에 따라 모든 거래소에 은행과의 제휴가 의무화된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은 NH농협은행과, 코빗은 신한은행과 제휴를 맺고 있다. 업비트는 IBK기업은행과 계약 연장에 실패한 이후 2년 5개월 만인 지난해 6월부터 케이뱅크와 새로 제휴 관계를 유지 중이다.

거래소들은 제휴 은행의 계좌로 실명확인을 한 고객에게만 투자용 가상계좌를 제공한다. 가상계좌에 대한 원화 입출금도 제휴 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암호화폐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들은 거래소별 제휴 은행 계좌를 꼭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은행에서는 암호화폐 거래를 계좌개설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 이용을 위해 제휴 은행 계좌를 새로 트려면 급여수령, 저축, 사업상거래, 연금수령, 생활비 운영 등 형식에 맞춘 ‘거짓말’을 해야 한다.

또 계좌 목적에 대한 이용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관련 증빙 자료를 갖추지 못해도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비대면으로 한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지만 1일 기준 100만원 이하로 인출 및 이체가 제한돼 활용성이 떨어진다. 지난 2019년 말 기준 국내 암호화폐 투자금액은 1인당 평균 693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 한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 사실과 다른 거래 목적 증빙을 유도하는 게 금융거래목적확인 절차와 한도 계좌 운영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한편으론 암호화폐 거래를 정상 금융 활동으로 취급하지 않고 계좌개설을 제한하는 건 모순된 행위”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융사기로 인한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신종금융사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계좌개설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한도 계좌를 만든 취지가 금융사기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사고 사례가 많은 암호화폐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계좌를 개설해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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