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목적 띤 계좌개설 횡행
금감원 "업권 자율규제 사안"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거짓 목적의 통장 개설이 횡행하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은행 모두 손을 놓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현행법상 이를 규제할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 2012년부터 소비자가 신규 계좌개설 요청 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와 이를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개설을 거절하거나, 1일 100만원 한도로 인출 및 이체가 제한되는 한도 계좌로 발급해주고 있다.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자금세탁 등 금융범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정부 종합대책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신규 계좌개설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은행의 금융거래목적 확인 절차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계좌개설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신규 계좌를 만들려면 급여수령, 저축, 사업상거래 등 거짓 목적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본지 2021년 2월 3일자 암호화폐 계좌 트려는데…은행 “급여통장이라고 쓰세요” 기사)

이러한 거짓 계좌개설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내달 시행되는 특별금융정보법에서는 모든 암호화폐 거래소 이용 시 제휴 은행 계좌 보유가 의무화된다.

통상 거래소당 제휴 은행은 1곳(빗썸·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업비트-케이뱅크) 정도다. 기존 주거래 은행과 달라 제휴 은행 계좌를 신규로 발급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 목적의 계좌 발급을 제한하는 건 신종금융사기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항변한다.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모순된 태도다.

이를 두고 관리 책임이 무거운 암호화폐 거래만을 목적으로 하는 신규 고객을 받는 게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암호화폐 거래에 사기 계좌 활용 위험성을 언급하면서도 급여수령, 저축 등의 거짓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걸 묵인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도 계좌개설 문제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다. 계좌개설에 대한 금융거래 목적 확인제도는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 성격으로 최초 도입됐다가 제도가 금융사 내규에 반영되면서 현재는 자율 운영에 맡겨진 상태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자율규제에는 당국의 관리감독 권한이 없을뿐더러 거래 당사자인 금융사가 부작용의 소지가 있어서 계좌를 개설해주지 않겠다는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위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거래 목적 확인제도엔 계좌가 개설 목적대로 사용되는지 확인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고, 사후 관리까지 맡기는 건 초법적(규범의 범위 초월)이게 된다”라며 “대포통장 개설 문제가 아니라면 그에 기인하는 다른 제도를 만드는 게 맞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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