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디자인해 만드는 곳 남양주 ‘이스트디자이너스’
양조 전문가 정창민 박사, 특허 낸 효모로 술 빚는 곳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이스트디자이너스’의 정창민 대표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효모배약액을 보여주며 자신의 양조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이스트디자이너스’의 정창민 대표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효모배약액을 보여주며 자신의 양조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알코올은 효모가 만든다. 과일의 당분이나 곡물의 탄수화물을 먹은 효모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

이렇게 효모가 만든 알코올이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고, 포도주며 맥주다. 그래서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효모가 맡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자신의 효모를 직접 만들어 관리하며 술을 빚는 곳은 얼마나 될까.

불행히도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식품연구원과 농업진흥청 등에서 토종효모를 찾아 보급하고는 있지만, 들쑥날쑥한 예산과 액상 효모의 관리 문제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효모 전문가가 양조장을 차려 자신의 효모로 술을 만들면서, 국내 막걸리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배상면주가에서 연구소장을 지낸 정창민 대표의 ‘이스트디자이너스’다.

지난 2018년에 문을 열고 이듬해부터 술을 생산하고 있는 신흥양조장이다.

배상면주가를 나온 뒤 번역하고 있던 ‘양조효모’ 관련 책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양조용 효모를 만들어 술을 설계해서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양조장 이름도 낯설지만 ‘이스트디자이너스’라고 지은 것.

효모는 단순히 알코올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알코올 생산 과정에서 다양한 에스테르 성분을 만든다.

따라서 어떤 효모는 꽃향이나 과일향 등 특화된 성격을 갖게 된다. 정창민 대표는 이런 효모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회사 이름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양조장은 아담하다. 사무공간 뒤편에 각종 실험기구가 놓여 있는 곳은 한마디로 정 대표의 놀이터다.

냉장고에는 생물실험에서 사용하는 효모 배양용 배지가 층층이 쌓여있으며, 또 다른 쪽에는 효모들의 먹이감이 줄지어 놓여 있다.

정 대표는 배양 중인 배지에서 자신이 원하는 개체들을 별도로 분리한 뒤 먹이를 주면서 증식시킨다.

'이스트디자이너스’에서 생산하고 있는 막걸리. ‘그래, 그날(예스,더데이)’은 청량한 단맛과 사과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스트디자이너스’에서 생산하고 있는 막걸리. ‘그래, 그날(예스,더데이)’은 청량한 단맛과 사과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를 막걸리 발효과정에 넣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양조장의 흩임누룩(입국)이나 가양주 방식의 술도가에서 사용하는 누룩 대신, 자신이 발굴한 효모와 원하는 효소만을 넣어 막걸리를 발효시키고 있다.

누룩이나 입국 없이 막걸리가 되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룩은 다양한 효모와 효소의 집합체다.

따라서 다양한 효모와 효소가 들어 있는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같은 방식으로 빚어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효모가 어느 종이 되느냐에 따라 술맛이 다르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정창민 대표의 술은 한결같은 맛을 낸다. 자신이 원하는 효모만을 넣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저온에서 관리하면 열처리를 하지 않고도 장기 보관 및 유통까지 가능한 효모라는 점에서 정 대표는 애지중지하며 효모를 키우고 있다.

현재 정 대표가 생산하는 막걸리는 ‘그래, 그날’ 한 종류다. 알코올 도수 5.5%에 사과 향이 진하다.

사과를 넣지 않았는데도 정 대표가 특허를 출원한 효모가 열심히 사과 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그래, 그날’의 첫맛은 상큼하다. 또한 생쌀 발효를 했기에 우유처럼 흰색을 띠고 있고, 아스파탐 등의 인공감미료 없이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맛을 낸다.

게다가 효모를 증식하는 과정에서 더 진한 사과 향을 만들어내는 돌연변이종을 최근 찾아냈다고 한다.

조만간 ‘그래, 그날’ 업그레이드 버전에 적용할 예정인데, 그러면 사과 향이 더욱 진한 막걸리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스페셜 에디션도 준비 중이다. 알코올 도수 7~8% 정도의 막걸리를 생각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막걸리에는 약간의 액상과당이 들어가지만, 준비 중인 막걸리는 쌀과 물, 그리고 효모와 효소만 들어가게 된다. 

쌀 고유의 단맛을 청량감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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