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징계보다 원칙에 맞는 징계 요구
플랫폼 가진 빅테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규범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을 ‘명확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래서 법규범의 의미 내용이 불확실하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자의적인 해석과 이로 인한 잘못된 집행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더 엄격하게 이 원칙을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보만리’로 2021년을 연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감독 당국을 향해 의미 있는 일성을 내놓았다.

내부 통제 미흡을 이유로 한 은행장에 대한 징계가 헌법상의 원칙을 흔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당국이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은행장 등의 최고경영자들을 징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은행권이 우려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지난주 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요약하면 은행장이 모든 임직원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그래서 대표이사인 은행장에 대한 징계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김광수 회장이 작심한 듯 은행장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급변하는 금융질서, 그리고 이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지는 조직은 방대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은행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 달라는 김 회장의 워딩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무게감으로 전달한 듯싶다.

그런데 명확성의 원칙이 꼭 법규범의 집행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명령과 업무지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않은 명령과 지시는 혼선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혼란을 부채질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명령과 지시, 그리고 메시지는 휴짓조각보다도 못한 가치를 갖는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런 명령이나 지시를 한 리더 또한 참모들에게 불명확성과 우유부단함의 상징으로 전달되기 십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당사자도 그렇게 이해할 것이다.

김광수 회장이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중의 메타포를 담고 있다.

은행장에 대한 무리한 징계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방점이 찍혀 있는 부분은 빅테크에 대한 철저한 영업 규율이다. 

이날 김 회장이 기자간담회 과정에서 밝힌 빅테크 관련 워딩을 모아보면 더욱 분명하게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핀테크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 취지를 고려하면 규제를 마련할 때 빅테크와 핀테크를 구분해야 한다.”

“영향력이 큰 빅테크 플랫폼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영업 규율이 마련돼야 한다.”

“빅테크의 신용위험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전반적 규제체계 정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 회장의 신년사에서 이같은 지적의 단초를 읽어낼 수 있다.

“풍부한 데이터, 브랜드 인지도로 무장한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로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경쟁과 제휴 또한 전례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이미 우려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의 급격하게 이동한 상거래 질서는 오프라인에 최적화된 산업의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런 점에서 은행 및 금융사들이 관련 투자를 집중하고 있지만,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IT 및 통신기업만큼의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이 상태만 유지해도 이들 빅테크는 시장의 주도적 플레이어가 된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은행권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협력을 유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김 회장의 이번 기자간담회는 빅테크에 대한 견제구이자, 감독기관의 칼날에 대한 공정성을 요구한 첫 행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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