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11:10 (수)
[응답하라, 우리술 192] 우리 술 막걸리 어디에 담아야 하나
[응답하라, 우리술 192] 우리 술 막걸리 어디에 담아야 하나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3.22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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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주전자에서 뉴트로 감성 읽을 수는 있지만
GNP 3만 달러 시대 걸맞은 용기 필요하지 않나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 마련된 1960년대 대포집의 내부 전경이다. 술상에 올라와 있는 주전자는 잘 알려진 노란색 양은 주전자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에 마련된 1960년대 대포집의 내부 전경이다. 술상에 올라와 있는 주전자는 잘 알려진 노란색 양은 주전자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탁자 위에는 막걸리가 든 노란 주전자가 있고 연탄난로 위에서 꽁치찌개가 끓고 있습니다.”

이인휘의 소설 《공장의 불빛》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에서도 등장인물은 담배 연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어디 소설에서만 그랬을까. 60~70년대 여느 공단 근처의 이름 없는 밥집에선 저렇게 난로 위에 꽁치찌개가 끓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노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왜 꽁치찌개일까. 그 당시엔 꽁치가 값싼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참치통조림은 등장하지 않았으니, 요즘 사람들이 즐기는 참치찌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노란 주전자. 이 주전자에서 뉴트로의 감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70~80년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으레 양은 주전자가 나왔으니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양은 주전자가 처음부터 노란 주전자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말 ‘우리말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말모이〉나 70년대 우리나라의 록 음악을 다룬 영화 〈데블스〉에 등장하는 막걸리 주전자는 은색 주전자다.

즉 연배가 있는 세대에게 뉴트로 감성은 은색의 투박한 주전자였다. 이후 80년대 이후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노란색 주전자를 보게 된다.

요즘 세대야 양은 주전자, 그것도 찌그러진 주전자에서 막걸리를 연상하고 있지만,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양은 주전자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알루미늄이 등장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그릇이나 사기그릇, 즉 도자기를 주전자와 술잔으로 사용했다.

20세기 초, 전기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알루미늄 생산량이 증가하고, 각종 알루미늄 합금을 생산하면서 값싼 양은 주전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당시 사람들은 도자기를 대신해 사용한다고 해서 양재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양재기. 낯선듯하지만 들어봄 직한 단어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도자기를 대신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양자기(洋瓷器)’라 불렸고, 이것이 ‘양(洋)재기’로 변화하게 된다.

안동의 설월당종택의 주안상 모습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수운잡방'의 음식과 술이 정갈하고 품격있게 담겨져 있다.
안동의 설월당종택의 주안상 모습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수운잡방'의 음식과 술이 정갈하고 품격있게 담겨져 있다.

《뜻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500가지》라는 책에는 “흙으로 구운 우리나라 도자기는 자칫 잘못하면 깨지기 일쑤였는데 서양에서 들어온 금속 그릇 등은 함부로 굴려도 깨지지 않고 튼튼했기에 알루미늄이나 양으로 만든 그릇을 양자기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즉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급증하면서 도자기는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 빈 곳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해서 가격도 저렴했던 양자기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황석영의 글 중에 《한씨연대기》라는 소설이 있다. 6.25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월남한 한씨 성을 가진 의사의 이야기다.

희곡으로 각색돼 브레히트식의 서사극으로 올려져 1990년대 후반 연극계에 파란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 다음의 대목이 등장한다.

“아이가 몸을 떨며 연약하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술하지 않고 버려두면 두 시간도 못갈 만큼 위독했다. 한 씨는 서 씨가 애가 닳아 기다리는 꼴은 본체만체하고 간호원을 시켜 취사실에서 숯을 얻어다 구멍 뚫린 깡통에 불을 지피고 양재기에 물을 끓이도록 했다.”

즉 1950년에 이미 양재기는 우리의 도자기를 대신하며 각종 조리기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해방공간의 신문광고를 보더라도 양은솥(당시는 ‘솟’으로 표기)은 자주 소개된다. 그리고 1960~70년대 기사에도 ‘양은’이 우리 ‘옹기’를 대체한다는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양은 주전자는 주역이 됐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주점 등에서 점차 쓰임새를 잃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뉴트로 감성에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 물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도구가 내용물을 규정하지 않는가. 국민소득 1000 달러 시절의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절의 막걸리는 격이 다르다.

10여 년 전부터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막걸리는 정성껏 한땀 한땀 빚어낸 크래프트 문화의 결정체들이다.

물론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그것은 사용자의 기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술을 문화로 바라본다면 시선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용물과 도구가 결을 맞췄을 때 비로소 품격이 부여된다고 본다. 이젠 그럴만한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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