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소를 닮은 순창 ‘친구들의 술’ 임 대표
질그릇 소줏고리로 증류하는 몇 안되는 술도가

지난 2019년부터 술을 빚고 있는 순창 ‘친구들의 술’ 임숙주, 김수산나 부부가 자신들이 빚은 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술은 오른쪽부터 지란지교 약주, 막걸리, 감홍로 등 순이다.
지난 2019년부터 술을 빚고 있는 순창 ‘친구들의 술’ 임숙주, 김수산나 부부가 자신들이 빚은 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술은 오른쪽부터 지란지교 약주, 막걸리, 감홍로 등 순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안진 작가의 글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첫 문장을 막걸리로 치환해 패러디한 문장이다.

허물없이 막걸리를 청해도 말없이 응해주는 그런 친구가 그리운 시절이다. 온산을 물들이는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니 더욱 그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술을 빚는 부부가 부창부수를 넘어서 ‘지란지교’의 경지에 올라 도반으로 술을 빚는 곳이 한 곳 있다.

순창의 신예 술도가 ‘친구들의 술’의 대표, 임숙주(65)·김수산나(59) 부부가 꼭 그렇다. 술을 좀 아는 사람들에겐 ‘지란지교’라는 술 브랜드로 더 친숙한 술도가.

막걸리는 물론 약주와 소주 모두를 ‘지란지교’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전통주점 및 파인다이닝 식당에 공급하는 곳이다.

전국에 봄꽃이 활짝 피던 3월 중순, 순창 ‘친구들의 술’을 찾았다. 아침부터 질그릇으로 만든 소줏고리에서 소주를 내리고 있는 술도가에는 달큰한 술향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기자를 맞는 임숙주 대표와 김수산나씨의 얼굴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백제의 미소’를 닮았다.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부부의 얼굴처럼 공진화가 이뤄진 듯하다.

술도가를 채운 술향기의 주인공은 ‘감홍로’. 소줏고리로 술을 내리면서 그 술을 지초와 계피, 꿀을 담은 질그릇을 통과시켜 붉은빛을 내도록 만든 술이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남원을 떠나려는 이 도령의 발길을 잡기 위해 이 술 저 술 내다가 마지막에 춘향이 내놓은 술. 그 술이 바로 감홍로다. 아직 정식 출시 전이어서 시범 양조를 겸해 감홍로로 손님을 맞은 것이다.

‘친구들의 술’은 임 대표의 인생2모작 과정에서 시도한 새로운 도전이다. 경기도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임 대표는 지난 2013년 고향 땅으로 내려와 무화과 농사를 짓는다.

비닐하우스 3동에 1000주의 무화과나무를 재배해 성공적으로 고향 땅에 안착한다. 전남 영암보다 일찍 시장에 출하한 것이 결정적인 승인이었다.

이렇게 농부로 변신한 임 대표는 어머니의 식초를 추억 속에서 이끌어내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누룩과 술을 시도하게 된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이지만, 술과 식초로도 가능성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술’은 술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한다. 심지어 소주를 내리는 증류기도 소줏고리를 고집할 만큼 옛방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사진은 ‘친구들의 술’ 양조장 전경
친구들의 술’은 술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한다. 심지어 소주를 내리는 증류기도 소줏고리를 고집할 만큼 옛방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사진은 ‘친구들의 술’ 양조장 전경

기억을 되살려, 이양주로 빚는 ‘순창백일주’를 만든 임 대표는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명주대상대회’에서 대상을 받는다.

술을 빚기 시작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내친김에 같은 기관에서 전통주 교육을 받으며 전통주와 문화를 배운 임 대표는 전통을 온전히 담아낸 술을 빚기로 결정한다.

술도가의 규모는 작고, 술을 빚는 모든 절차는 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구조다.

말 그대로 크래프트 막걸리와 약주를 빚는다. 게다가 증류기도 질그릇이다. 소주를 내는 양조장들이 동증류기를 도입해 생산량도 신경 쓰는 데 반해, 임 대표는 느리게 가는 길을 선택한다.

수율이 낮아 다들 피하지만, 100년 전 우리 술은 소줏고리로 내렸고, 누군가는 옛 방식으로 상업양조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술 빚는 모든 절차와 방식은 번거롭지만 임 대표 부부의 지향점은 제대로 만든 전통주, 손으로 만든 우리 술에 꽂혀있다. 그래서일까. 임 대표 부부의 미소처럼 술도가는 여유롭기만하다.

이 집 술의 생명은 맛의 균형이다. 산미와 감미가 같이 적당하게 오른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출신의 양조장 술들이 감미를 강조한다면, 이곳은 산미가 뒤따라 올라와 입에 침이 고이도록 만든다.

막걸리와 약주는 100일 동안 발효하고 숙성에만 90일을 투자한다. 대략 6개월은 넘어야 술이 시장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술을 증류한 소주도 100일 동안 숙성을 한다. 그러니 단단한 안정감이 다음 술을 부른다.

그래서 이 집 술은 좋은 친구와 좋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술이름으로 지은 ‘지란지교’가 더욱 어울리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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