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좋은 술, 유기농 쌀로 고집스럽게 만드는 술도가
조르바 닮은 권재헌 대표 입담에 남도기행의 맛 깊어져

죽향도가에서 생산하는 술은 담양에서 생산하는 쌀로 빚는 막걸리와 약주, 그리고 소주  등이다. 사진은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천년담주’와 각각 1, 3, 5년 숙성시킨 소주 ‘죽향41’.
죽향도가에서 생산하는 술은 담양에서 생산하는 쌀로 빚는 막걸리와 약주, 그리고 소주 등이다. 사진은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천년담주’와 각각 1, 3, 5년 숙성시킨 소주 ‘죽향41’.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막걸리를 빚는 일은 대부분의 양조가 그렇지만, 육체적인 힘이 매우 필요한 노동이다.

우선 쌀의 무게가 그렇다. 그리고 다 지은 고두밥을 발효조로 옮기는 것은 물론 발효를 끝낸 막걸리를 배달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물리적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막걸리는 젊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양조를 꿈꾸던 사람 중 많은 사람이 힘에 부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 십수 년 무게와의 지난한 싸움을 하다

손목이든 허리든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곳도 양조장이다.

취재를 위해 찾은 전남 담양의 죽향도가. 토요일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권재헌 대표는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독일 고테사의 증류기 앞에서 소주를 내리고 있었다.

이미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육체의 나이는 운동을 많이 한 40대로 보인다. 성격도 어디 하나 막혀 있지 않아 거침이 없고 솔직하다.

“아버지가 막걸리를 만들었던 1970~80년대는 달보드래하게 만들어내면 다 팔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권 대표.

“당시엔 원료 값의 10배는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 마진도 쉽지 않다”고 악화되고 있는 막걸리 업계의 현재 상황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권 대표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술을 만들려한다”고 자신의 술 철학을 밝힌다. 그래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향도가에서 만들고 있는 막걸리는 ‘죽향’과 ‘대대포’ 두 가지. 죽향은 지역에서, 대대포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 주로 판매하는 술이다.

이 술의 원료인 쌀은 죽향이 20kg 한 포대에 5만6000원, 그리고 대대포가 7만 원 하는 쌀을 사용한다.

양조장 어디에도 ‘나라미’는 보이지 않는다. OEM으로 생산하고 있는 김해 ‘봉하쌀 생막걸리’도 유기농 쌀로 빚고 있다.

즉 모든 재료가 일반미이며, 그중 두 종류는 유기농 쌀을 사용하고 있다.

전남 담양의 죽향도가 권재헌 대표가 소주를 증류하는 자신의 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 5대 정도 도입된 독일 고테사의 증류기로, 훨씬 부드러운 술맛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전남 담양의 죽향도가 권재헌 대표가 소주를 증류하는 자신의 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 5대 정도 도입된 독일 고테사의 증류기로, 훨씬 부드러운 술맛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쌀값과 원부자재 가격을 생각하면, 이런 원료 정책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권 대표는 좋은 술을 만들어야 팔린다는 생각에 현재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싶다.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권 대표의 화법에서 읽힌 그의 미래가 그렇기 때문이다.

자신의 술에 대한 설명이든, 살아온 인생역정 어느 하나도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조르바’같다.

자유로운 영혼,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끈이 있다면, 그 끈을 끊고 세상에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우선 해내는 성격이 그렇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천직인 막걸리 양조에 전념하는 모습도 그렇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만든 술은 결국 품질을 인정받아 지난해 두 개의 상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탁주부문 대상과 청약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탁주인 ‘대대포’는 유기농 쌀과 벌꿀을 사용해 장기 저온 발효를 한 술로, 2019년 최우수상에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는 영예를 차지했으며, 약주인 ‘천년담주’는 같은 재료에 생대나무분말과 갈대뿌리 등을 더해 깔끔한 맛을 이끌어낸 술로, 지난해 내놓자마자 최우수상을 받았다.

민속주와 지역특산주는 모두 통신판매가 가능하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죽향도가는 직접 찾아가고 싶은 양조장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좋은 국내산 쌀로 정직하게 빚어낸 막걸리를 양조장에서 직접 마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그리고 술도가 주인장의 구수한 사투리에 담긴 솔직한 인생사를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남도 기행의 의미는 차고 넘친다.

게다가 좋은 증류기로 만들어낸 소주까지 있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다음 일정 때문에 일어서는 기자를 정 깊은 전라도 사내는 간결한 말로 옷깃을 잡아챈다. 그덕에 제 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또 가고 싶은 양조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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