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이미지 없는 과거로의 복귀 위한 출사표
인문주의 정책으로 조직의 자긍심 북돋을 예정

사진 = 부산은행
(사진: 부산은행)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종교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장악했던 서양의 중세에 대한 역사학계의 평가는 극단적이다.

특히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요한 하이징가의 시각은 극명하게 중세와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르고 있다.

한쪽은 암흑의 시대 중세를 극복하고 화려한 문화의 봄, 르네상스를 맞이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중세와 르네상스는 그 경계가 모호하며, 그래서 과한 르네상스에 대한 평가 대신 ‘중세의 가을’쯤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에 대한 분위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난 2001년에 개봉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초콜릿〉을 떠올리면 된다.

100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프랑스의 고요한 한 시골 마을에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가 등장하면서 ‘변화’라는 것이 일게 되는데, 이 영화 속 설정을 연상하면 쉽게 상상해 낼 수 있다.

중세에 대한 평가가 무엇이든,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한 위상을 어떻게 정리하든 간에 르네상스는 화려한 인문의 봄을 여는 근대의 여명기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르네상스에 대한 시선의 온도가 차이 날 뿐 르네상스가 근대를 여는 출입구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출입구는 영화 〈초콜릿〉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일으키는 ‘변화’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보자. 발전론적 시각에서 과거는 원시와 결핍, 그리고 반문명 등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과거는 오늘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중세의 가을이 되었든 르네상스라고 정의하든 당대 유럽 지식인들의 관심사는 과거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는 당연하게도 원시로서의 과거가 아니라 문명으로서의 과거였다. 그 과거에서 그동안 놓쳐 왔던 것을 회복하고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크 바전이 《새벽에서 황혼까지》애서 밝혔듯 “그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더 순수한 종교가 아니라 더 세속화된 세계를 의미”한다.

종교와 세속은 끊임없이 우리를 갈등하게 만드는 본보기가 되는 기준이었다. 마치 규범과 실용의 관계처럼 일상의 선택에서 매 순간 개입하는 명제들이다.

지난 3월 초 전임 행장이 은행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후보에서 사퇴했던 BNK부산은행의 은행장이 지난달 말 새로 선임되었다.

직전까지 여신지원본부를 맡았던 안감찬 부행장이 새롭게 부산은행의 키를 잡았다.

기자간담회를 통한 취임 일성은 ‘부산은행의 르네상스’다. 엘시티, 주가조작, 라임펀드 문제 등 몇 년간 부산은행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리스크를 털어내고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현재 전체 금융업이 겪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54년간 지속되면서 누적된 비효율적인 조직 구조와 운영을 과감하게 혁신하고, 생산적인 곳을 중심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각종 사건 사고로 떨어진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사기진작책을 준비하겠다고 내부 프로세스에 대한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부산은행의 위상과 자존심을 확립하고 내실을 다져 ‘부산은행의 신 금융 르네상스 시대’를 창조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즉 여기서 안 행장이 밝힌 르네상스는 부정적인 리스크로 훼손되기 이전의 부산은행을 염두에 둔 것이다.

떨어진 평판을 수습하고 과거의 명성을 얻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부산은행의 임직원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임 은행장은 르네상스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한다. 모든 문제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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