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의 미덕, 긴 기다림과 꽃비처럼 내리는 낙화의 아름다움
조선시대 산벚나무 껍질로 각궁 마무리, 죽어서도 쓰임새 갖춰

3월부터 봄소식을 알려줬던 벚꽃은 4월에도 겹벚꽃으로 깊어가는 봄을 확인하게 해준다. 사진은 충남 서산 개심사의 겹벚나무다.
3월부터 봄소식을 알려줬던 벚꽃은 4월에도 겹벚꽃으로 깊어가는 봄을 확인하게 해준다. 사진은 충남 서산 개심사의 겹벚나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벚꽃은 3월 말에 극성하고 4월 중순 들어 ‘벚꽃엔딩’의 노랫말처럼 사라져간다.

마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 분)가 은수(이영애 분)의 재회 요청을 뿌리치고 벚꽃 흐드러지게 핀 거리에서 이별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봄날은 간다.

하지만 4월 말에도 벚꽃은 가지가 꺾일 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상춘을 나누고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3월에 피는 벚꽃은 제주도와 해남이 자생지인 왕벚나무였다면, 4월 말의 춘심을 자극하는 벚나무는 산속에서 귀룽나무와 합을 이루는 산벚나무와 초파일 연등과 함께 산사를 물들이는 겹벚나무다.

그래서 4월 말은 왕벚나무 때처럼 분주하지는 않지만, 겹벚나무와 산벚나무를 찾는 상춘객들로 산과 절이 야단법석이다.

지난 4월 마지막 주말, 충청남도 서산의 개심사와 문수사는 절정에 달한 겹벚나무를 보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겹벚나무의 꽃은 왕벚나무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장미과에 속하는 왕벚나무는 꽃잎이 5장인데, 겹벚은 10장을 넘어선다.

그래서 뭉텅이로 내리는 함박눈 같다. 하나의 개화 포인트에서 최소 세 가닥의 꽃자루가 매달려 꽃을 맺고 있으니 송이 송이가 큼직큼직하다. 그래서 왕벚과 겹벚은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개심사에는 희귀한 벚꽃인 청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돌연변이로 하얗고 꽃잎 곳곳에 초록색을 새기고 있는 청벚나무의 수령은 대략 150년 정도.

다른 곳에 없으니 더욱 사람의 발길을 끌어 챈다.

개심사와 같은 상왕산에 자리한 문수사는 수령은 개심사보다 적지만 꽃의 색이 진하다. 그러니 마지막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두 곳 모두 찾는다고 한다.

벚꽃은 매화처럼 마른 가지에 꽃을 피운다. 지난 늦가을 이미 움을 트고 준비했던 꽃망울을 3월 중순 이후 나무에서 밀어내듯 꽃을 터뜨린다.

그 꽃이 필 때는 군집을 이룬 벚나무가 분홍색 구름처럼 보일 만큼 꽃숲을 이룬다.

그래서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비록 매화에 관한 설명이긴 하지만,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매화와 왕벚꽃은 생태가 유사하다.

서산 개심사의 벚나무가 유명한 것은 돌연변이를 통해 청색을 띄는 청벚나무가 있어 더 그렇다. 사진은 하얀색에 약간의 분홍빛과 초록빛을 같이 담고 있는 청벚나무가 활짝 개화한 모습이다.
서산 개심사의 벚나무가 유명한 것은 돌연변이를 통해 청색을 띄는 청벚나무가 있어 더 그렇다. 사진은 하얀색에 약간의 분홍빛과 초록빛을 같이 담고 있는 청벚나무가 활짝 개화한 모습이다.

꽃이 잎보다 먼저 나고, 질 때는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까지 같은 모양새다. 김훈은 이에 대해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벚꽃의 미덕은 긴 기다림과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까지 아름다움을 전하는 솔직함이라 할 수 있다.

가을부터 봄까지 기다리며 개화를 준비하는 모습과 열흘 정도 개화한 뒤 바람에 꽃비처럼 낙화하는 모습까지 모두 벚나무가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메시지인 것이다.

오츠 슈이치 교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에서 “정말 찰나를 살다간 그들이지만 슬픔이나 미련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리라.

시간에 관계없이 꽃을 피운다는 소명은 완전히 이루었기 때문이리라”라고 벚나무에 관해 적고 있다. 

이 같은 미덕과 함께 벚나무는 실용성까지 갖추고 있다.

꽃부터 피는 왕벚과 달리 꽃과 잎이 같이 나는 산벚나무는 나무의 조직이 조밀한데다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아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특성 때문에 목판 제작에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64% 정도가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무껍질이 단단하여 조선 시대에는 주력무기인 각궁의 마무리를 이 나무의 껍질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인조가 벚나무 식수를 권장했다고 하니 벚나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제 역할을 다하는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일본의 국화여서 한동안 홀대받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벚나무는 일본의 벚나무와 종이 다르다고 한다.

산벚나무와 올벚나무의 잡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즐기는 왕벚나무라고 하니 더는 ‘사쿠라 논쟁’을 벌일 이유도 없을 듯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나무 그 자체로만 보면 될 듯하다. 우리도 벚나무처럼 그렇게 타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를 자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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