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령 마로니에, 덕수궁 석조전 옆에서 100년 넘기며 자라
유럽에선 일상처럼 주변에서 만나는 나무, 소설에도 자주 등장해

덕수궁 석조전 옆 평성문앞에 100년이 넘은 마로니에 나무가 있다. 고종의 환갑 선물로 네덜란드 공사가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마로니에 나무다.
덕수궁 석조전 옆 평성문앞에 100년이 넘은 마로니에 나무가 있다. 고종의 환갑 선물로 네덜란드 공사가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큰 마로니에 나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마로니에’라는 나무 이름은 낭만으로 다가온다.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라는 노래 가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제목의 가요가 라디오와 레코드점에서 울려 퍼지던 1970년대, 그 시절의 감성은 ‘마로니에’를 낭만으로 기억하게 했다.

하지만 마로니에라는 단어는 알아도 실제 이 나무를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동숭동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지만, 실제 이 공원에 있는 나무는 마로니에가 아닌 ‘일본칠엽수’이니 더욱 그렇다.

흔히 마로니에라 부르는 나무는 발칸반도가 원산지인 ‘가시칠엽수(서양칠엽수)’다. 17세기 이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 나무를 경쟁적으로 심었으며, 그 덕에 세계 4대 가로수라 불릴 정도로 유럽에서 마로니에를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마로니에는 일상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샹젤리제 거리는 물론 센강 변 등 곳곳에서 마로니에는 시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어디 이뿐이랴. 탑처럼 피는 원추형의 꽃이 피는 5~6월이면 이 꽃을 보기 위해 나들이를 나설 정도로 마로니에는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나무는 유럽 유명작가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선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독일인 망명객 라비크가 독일을 탈출해 파리를 들어와 자신의 부재중에 변화한 파리를 확인하는 대목에서 등장한다.

겨울 3달간의 부재였지만, 독일인 비밀경찰을 피해 숨어 사는 그에겐 그 시간이 3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시간을 라비크는 다시 찾은 파리의 마로니에꽃이 핀 것을 통해 확인한다.

이 소설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인 조앙 마두를 만난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근처의 바에서 ‘칼바도스’를 마시기 위해 걸었던 그 길에서도 라비크는 열병식을 준비하듯 2줄로 서 있는 마로니에를 바라봤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도 마로니에는 등장한다.

마로니에의 우리말은 ‘가시칠엽수(서양칠엽수)’다. 이 나무의 꽃은 5~6월에 피는데 탑처럼 원추모양으로 피며, 수분이 된 꽃은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곤충들에게 수분되지 않은 꽃을 표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마로니에의 우리말은 ‘가시칠엽수(서양칠엽수)’다. 이 나무의 꽃은 5~6월에 피는데 탑처럼 원추모양으로 피며, 수분이 된 꽃은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곤충들에게 수분되지 않은 꽃을 표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주인공 로캉탱이 어느 날 아이들이 하는 물수제비를 하려는 순간 구토 증상을 보이더니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된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본 마로니에의 검은 뿌리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심지어 자신을 마로니에의 뿌리라고까지 말하는 로캉탱.

마로니에 나무는 본질을 밝히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섬을 마로니에에 빗대 소설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에 등장하던 마로니에가 전 세계를 울린 어린 소녀의 일기에도 모습을 나타낸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운하 주변, 나치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밀실이 딸린 다락방에 숨어 살았던 안네 프랑크.

소녀는 창문을 통해 겨울철 헐벗은 마로니에를 보면서 봄이 되면 잎이 펴고 꽃이 필 것이라고 마로니에에 자신의 희망을 이입시켰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녀의 소원을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나무는 마지막까지 소녀에게 희망을 놓치지 않는 생명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안네 프랑크의 나무는 1944년의 일인데, 이보다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네덜란드의 마로니에가 들어온다.

그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100년이 넘은 마로니에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덕수궁 석조전 옆 평성문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나무들이 궁궐에 자리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13년 네덜란드 공사가 폐위된 임금 고종에게 마로니에를 선물한다.

수만 리 머나먼 네덜란드에서 다 큰 거목을 실어 올 리는 없고 아마도 공사관에서 키우던 나무 몇 그루를 보냈을 듯싶다.

이렇게 선물 받은 나무가 두 아름이 될 만큼 큰 거목으로 성장해 덕수궁을 지키고 있다.

공원이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정원수이거나 거리의 경관을 위해 심어진 가로수로 심어진 유럽의 마로니에 나무는 수 세기 동안 유럽의 근현대사 모두를 지켜봤을 것이다.

잔인한 전쟁과 피를 부르는 혁명, 그리고 전승의 기쁨을 노래하는 자리까지 빠짐없이 당대의 사람들과 호흡했을 것이다.

덕수궁의 마로니에 나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근현대사 100년은 한 마디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사실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때의 유행가가 그려준 이미지가 그럴 뿐이다. 연한 베이지색으로 탑처럼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덕수궁에 나가볼 일이다.

그 나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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