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의 왕’ 다른 수종과 달리 물가 선택해 왕성하게 성장
도산서원 앞 400년 된 두 그루, 서원의 웅장한 당산나무 역할

도산서원 입구에 있는 왕버들 중 하나. 나무가지가 옆으로 자라 기묘한 수형을 이루고 있다. 건강한 이 나무는 마치 서원을 지키는 무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남의 선비들이 퇴계를 느끼기 위해 서원을 찾았다면 이 나무 앞에서 겸손을 먼저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도산서원 입구에 있는 왕버들 중 하나. 나무가지가 옆으로 자라 기묘한 수형을 이루고 있다. 건강한 이 나무는 마치 서원을 지키는 무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남의 선비들이 퇴계를 느끼기 위해 서원을 찾았다면 이 나무 앞에서 겸손을 먼저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올해 유명세를 치른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왕버들’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하면서 높은 가격으로 보상받기 위해 심은 나무가 ‘왕버들’이었기 때문이다.

욕망의 포로가 된 공직자들의 만행과도 같은 일에 온 국민은 엄청난 상실감을 맛봐야 했고, 그에 따르는 분노를 재·보궐선거에서 표출했던 사건이니 왕버들만 억울하게 불편한 이야기 하나를 갖게 됐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왕’이라는 뜻이다. ‘왕대’ ‘왕벚나무’ ‘왕머루’ 등 ‘왕’이 붙은 나무는 같은 종에서도 유독 나무의 크기나 꽃과 잎 등이 더 크다. 왕버들도 마찬가지다.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다른 버드나무에 비해 웅장하다. 가는 가지가 길게 늘어져 하늘하늘한 능수버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치 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나무의 수형이 우람한 것은 왕버들만의 독특한 생존전략에서 비롯된다.

왕버들은 숲속에서 다른 나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보다 물이 많은 개울가나 호숫가를 선택했다.

따라서 더 많은 물을 취할 수 있었던 왕버들은 같은 수령의 다른 나무들보다 빨리 자라 경쟁 수목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압도해버린다. 그래서 마을 초입을 지키는 당산목이 많다.

나무의 수형이 크다 보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 나무가 제법 된다. 그중 유명한 것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의 성밖숲에 있는 50여 그루의 왕버들.

이 밖에도 전북 남원 광한루와 제천 의림지, 그리고 경북 청송의 주산지 등에도 멋스럽게 왕버들이 서 있다.

특히 주산지에서는 왕버들이 물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며 자라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도 두 그루의 멋지게 생긴 400년 수령의 왕버들이 자리한다.

마치 도산서원을 지키는 무사라도 되는 듯이 도산서원 앞마당을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같이 버티고 있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왕’을 뜻한다. 가느다란 능수버들과 달리 이파리가 넓으며 웅장한 수형을 자랑한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 입구에는 두그루의 왕버들이 자란다. 수령은 4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왕버들’은 ‘버드나무의 왕’을 뜻한다. 가느다란 능수버들과 달리 이파리가 넓으며 웅장한 수형을 자랑한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 입구에는 두그루의 왕버들이 자란다. 수령은 400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이 죽은 후 세워졌고(1575년), 왕버들의 수령도 400여 년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보아서 퇴계와의 직접적인 연계는 없지만, 그를 추앙하는 경북의 선비들이 도산서원에 모이면 이 나무의 위용에 겸손해질 듯싶다. 그런 점에선 이 나무는 도산서원의 당산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구속된 몇 사람의 LH공사 직원들은 왕버들을 삿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지만,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은 버드나무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버드나무 가지를 문간에 달아두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이 가지가 100가지 귀신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무형문화재인 〈봉산탈춤〉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취발이’가 나올 때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버드나무 가지다.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버드나무 가지에 이입시킨 탓이다.

또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주곤 하는데 이도 버드나무가 가진 강인한 생명력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그래서인지 교통의 중심지에는 지금도 버드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

그런데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버드나무에서 우울한 이미지를 잡아낸 듯하다.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개울가로 이어진 길에 서 있는 버드나무 가지가 꺾이면서 죽음에 이르렀고, 《오셀로》에서 흑인 장군 오셀로의 오해를 받은 아내 데스데모나는 죽음을 예감한 듯 ‘버들의 노래’를 부른다.

연전에 출간된 《길고 긴 나무의 삶》이라는 책에는 버드나무가 슬픔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돼 있다.

셰익스피어는 물론 1970년대의 포크록 가수들까지 버드나무에서 버림받은 연인과 실연 등 애처로운 감성을 담아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피오나 스태퍼드는 “버드나무는 무너진 애정과 자살에 이르게 하는 절망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규정한다.

아무래도 가는 가지가 늘어진 능수버들에서 이미지를 따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왕버들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능수버들보다 이파리가 넓고 웅장한 왕버들을 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왕버들은 강건한 당산나무로 남아 있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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