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골든라이프케어 대기자 정원 10배
누적 손실 51억…비급여 통제 엄격해
"규제가 진출 걸림돌" 완화 목소리 ↑
시니어케어 사업 단계적 확대 밑그림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의 도심형 요양시설 ‘서초빌리지’. (사진=KB손해보험)

<대한금융신문=유정화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사 요양사업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면서 '새 먹거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보험업계가 화색이다. 다만 높은 초기 투자 비용, 불확실한 수익성 등은 보험사들이 요양사업 진출을 망설이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보험사 가운데 자회사를 설립해 요양사업에 진출한 곳은 KB손해보험이 유일하다. 하지만 KB손보의 요양시설은 높은 인기에도 5년째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KB손보는 왜 돈 안 되는 사업에 힘을 쏟는 걸까.

KB손보는 지난 2016년 선진국형 요양시설 'KB골든라이프케어'를 설립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을 대상으로 치료보다는 일상생활 지원에 중점을 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요양등급을 보유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장기요양보험 지정기관이다.

현재 KB골든라이프케어가 운영 중인 시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다. 거주형 노인의료복지시설(위례빌리지, 서초빌리지)과 출퇴근 식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노인복지시설(강동케어센터, 위례케어센터)이 있다.

KB골든라이프케어의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송파구 위례동에 있는 위례빌리지는 입소 정원이 128명인데, 현재 정원의 10배 이상의 인원이 대기하고 있다. 우면산 인근에 자리 잡은 서초빌리지 역시 대기자가 정원의 3배 수준에 달한다.

요양시설이 주로 한적한 시골과 같은 지방에 있다 보니 서울 도심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의 요양시설은 수요가 높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요양 시설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불확실한 수익성…운영 리스크도 커

치솟는 인기에도 KB골든라이프케어는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5년간 누적 순손실만 51억원을 기록했다. 설비나 운영 인력 등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데다 비급여 항목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만큼 자체 사업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노인들은 장기요양급여의 상당 부분(재가급여는 85%, 시설급여는 80%)을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때문에 장기요양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선 비급여 외에는 방법이 없다. 상급침실료, 식사비, 간식비, 이·미용비 등이 비급여 항목에 해당한다.

수익을 높이려면 비급여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쉽사리 가격을 높게 조정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요양사업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모습이 자칫 부정적으로 비추어져 브랜드 평판에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저성장, 저수익 구조에 빠진 국내 보험사들에 요양사업 같은 신사업은 높은 관심거리다"며 "다만 아직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사고나 민원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등의 리스크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 연계 ‘시니어케어’ 시장 공략

KB손보가 요양사업에 힘을 주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급격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응해 KB금융의 보험, PB, 리브온(부동산), 헬스케어 등 시니어케어 체계를 종합적으로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중장기적으로 수요가 급증할 시니어 사업을 공략하기 위한 ‘밑그림’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증가, 수명연장에 따른 후기고령자 증가 등으로 잠재적 요양서비스 대상자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후기고령자는 75세 이상 고령자를 의미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2035년에는 후기고령자가 709만명으로서 노인 인구의 47%를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먼저 요양시설 사업을 통해 확보한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그룹 내 외부와 네트웍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후 비교적 건강한 후기 고령자에게 노인주거복지서비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KB손보는 하반기 출범을 목표로 보험업계 처음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특화 자회사 KB헬스케어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금융위 인가 신청을 앞두고 있다. 자체적으론 가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별 건강상태 분석,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보험연구원)
일본 보험사 장기요양사업 진입 현황. (사진=보험연구원)

고령화 앞선 일본, 앞다퉈 요양사업 

일본에선 솜포(SOMPO) 홀딩스, 동경해상, 니혼생명 등 유수의 보험사들이 요양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고령화가 우리나라보다 일찍 찾아온 일본은 제도 및 정책적 지원을 통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했다. 때문에 요양 산업이 대형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일본에선 요양시설의 소유와 운영이 분리된다. 노인 비즈니스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운영 리스크를 전문운영회사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산운용사 등 대규모 민간자본 유입을 유도했다. 노인요양시설의 개발과 운영 사업자가 동시에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가령 일본의 대형 손해보험그룹인 솜포홀딩스는 지난 2015년 요양사업에 진출했다. 메시지, 솜포케어넥스트, 재팬케어서비스 등 기업을 솜포케어로 통합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요양사업을 기반으로 한 식품 사업에도 나섰다. 지난 2019년 기준 매출액은 1238억엔, 영업이익이 117억엔에 달한다.

일본 최대 손해보험회사 동경해상은 자회사 ‘베터 라이프 서비스(BLS)’를 설립해 요양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주택건설 대기업 다이와 하우스 그룹으로부터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 2개 건물을 위탁 받았다. 동시에 방문 서비스를 함께 실시해 수익원을 다양화했다.

진출 망설이는 보험사…"문턱 낮춰달라"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업계가 함께 요양사업 활성화 제도 개선 마련책에 나섰다. 업계에선 민간부문의 투자와 참여를 유도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민간의 초기 투자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민간기업이 요양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확보해야만 한다. 다만 토지·건물의 가격이 높아 요양시설 운영사업자가 매입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요양시설이 유독 지방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에선 ‘시설 설치에 관한 특례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해 고시하는 지역에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민간운영 시설에 대해서 타인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사용해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지주 소속 보험사의 요양사업 신용 공여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 규제상 시설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증자가 모회사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신용 공여 시 모회사의 자산 운용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모회사와 요양사업 자회사간의 신용공여가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금융지주회사에 속하는 보험사들의 요양사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이를 통해 인프라 확충과 요양서비스의 질적 향상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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