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만들고 남은 유청 발효·증류해서 만든 우유 맛 나는 술
증류에 천착한 백선필 대표, 일산에 양조장 차리고 본격 생산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 등장했다. 유목민들이 즐겨 마셨던 마유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술이다. 낙농업이 발전한 영국과 미국 등에서 소규모증류소 붐이 일면서 이 술도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코아베스트양조장이 지난달부터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알코올 도수 40도의 화이트 버전과 오크 숙성버전이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 등장했다. 유목민들이 즐겨 마셨던 마유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술이다. 낙농업이 발전한 영국과 미국 등에서 소규모증류소 붐이 일면서 이 술도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코아베스트양조장이 지난달부터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알코올 도수 40도의 화이트 버전과 오크 숙성버전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가공하지 않은 우유를 그대로 두면, 지방 성분은 뭉쳐져 치즈가 되고 액체 부분인 유청과 분리된다.

신석기 시대, 소를 처음 가축으로 만들었던 시절부터 목동들에 의해 발견된 우유의 이 같은 성질은 다양한 유제품으로 발전하며 인류의 중요한 먹거리가 돼 주었다.

이런 유제품 중 주목받지 못한 성분이 하나 있다. 보기에도 별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유청이다.

그런데 이 유청에 들어 있는 유당(젖당, 락토스) 성분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지역이 먼저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앙아시아와 몽골, 시베리아의 유목민들은 유청의 발효 능력을 눈여겨보고 말의 젖을 발효시켜 알코올음료(마유주, 쿠미스)를 만들어 마셨다.

정착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농경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유목민들에게 마유주는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술의 신)에게 바쳐진 포도주와도 같았고, 이집트의 신 아이시스(대지의 신)에게 올린 맥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워낙 유청에 담긴 유당의 양이 적었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는 그리 높지 않았고, 그래서 증류 기술이 보편화된 이후 유목민들은 이 술을 증류해 ‘아르히’라는 증류주를 만들어 마셨다.

이런 사연을 가진 마유주의 전통을 잇는 술이 소규모증류소 붐과 함께 유럽과 미국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우리나라에서도 유청을 활용한 증류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등장했다.

지난해 일산에 문을 연 ‘코아베스트양조장(대표 백선필)’이 바로 그곳이다.

홍대 앞에서 맥주펍을 운영하다 양조인의 길로 노선을 변경한 백 대표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펍을 정리하고, 시카고 여행에 나선다.

그 길에서 만난 바를 겸한 소규모증류소에서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백 대표.

직접 증류한 술들을 시음시키면서 증류주가 지닌 장점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은 바에 대한 그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고, 다양하게 마신 증류주에서 새로운 가능성까지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양조의 길은 맥주, 전통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접근하게 됐고, 특히 증류 교육을 받으면서 백 대표는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게 됐다고 한다.

시카고 여행길에서 만난 소규모증류소에서 증류의 묘미를 맛보고, 양조실습 교육을 받기 위해 캐나다 유학까지 받아가며 양조인의 길을 선택한 코아베스트양조장의 백선필 대표. 사진은 백 대표가 발효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시카고 여행길에서 만난 소규모증류소에서 증류의 묘미를 맛보고, 양조실습 교육을 받기 위해 캐나다 유학까지 받아가며 양조인의 길을 선택한 코아베스트양조장의 백선필 대표. 사진은 백 대표가 발효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증류 실습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이론에서 찾을 수 없는 답들은 모두 실제 증류 과정에서 체득되는 것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2019년 캐나다로 두 차례 증류 실습 아카데미를 떠난다.

하루 종일 증류를 하면서 그 결과물을 평가하고, 증류액의 품질에 따라 각각 다른 술로 모으는 것을 보면서 증류의 섬세한 세계에 한발씩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8개월간의 증류학교 코스였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듯이, 그가 선택한 캐나다의 증류학교 코스도 그랬다.

떠날 때 시작된 ‘코로나19’사태는 결국 전지구적 차원의 ‘펜데믹’으로 커져 4개월 만에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증류소를 만드는 일이었다.

일산에 소규모증류소를 차리고,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증류주를 준비한다.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앞서 설명한 우유의 유청을 발효해서 증류한 웨이(whey) 보드카다.

흔히 보드카는 식물성 재료를 다단식 증류 과정을 거쳐 취합한 무색무취의 순수한 알코올 결정체를 의미하지만, 웨이 보드카는 동물성인 우유에서 알코올을 모은다는 것만 다르지, 여러 차례 증류해 술을 모아낸다는 측면에선 보드카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술이다.

백 대표의 술도 마찬가지다. 80ℓ의 우유를 치즈로 만들면 72ℓ 정도의 유청이 만들어지고, 이 유청으로 발효를 하면 알코올 도수 2~3도의 발효주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술덧을 증류하면 알코올 도수 15~20%의 증류주를 10ℓ 정도 모으게 되고, 이렇게 원주를 세 차례 증류해서 모은 술을 한꺼번에 증류해서 40%대의 술을 만들고, 다시 모아서 세 번째 증류해 80%대의 술을 만들어, 최종 병입을 하면서 알코올 도수 40%의 술로 출하한다.

이처럼 여러 차례 증류하는 것은 원재료가 가진 좋은 특징을 남겨두고 거친 향과 맛을 다듬기 위해서라고 백 대표는 말한다.

이 술은 낙농업이 발전한 영국과 미국 등의 소규모증류소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우유의 크리미함과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새로운 경향의 증류주라고 말할 수 있다.

코아베스트양조장에서 만든 술도 우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술의 이름은 ‘타락’.
우유의 예전 명칭인 타락을 중의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백 대표는 이렇게 증류한 술을 원주 그대로 병입한 화이트 버전과 오크칩을 넣어 숙성한 오크 버전 두 종류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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