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정신 살려 성리학 공간에 구하기 힘든 회화나무 대신 식재
경북 성주 회연서원, 괴산, 아산 구괴정 등 모두 문화변용 케이스

성리학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나무는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다. 그런데 느티나무도 이 나무들처럼 유교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일종의 문화변용이다. 파주 자운서원의 느티나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진은 자운서원의 느티나무 중 한 그루. 나무의 표피가 긴 세월을 말하는 듯하다.
성리학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나무는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다. 그런데 느티나무도 이 나무들처럼 유교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일종의 문화변용이다. 파주 자운서원의 느티나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진은 자운서원의 느티나무 중 한 그루. 나무의 표피가 긴 세월을 말하는 듯하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은행나무와 회화나무는 성리학적 가치체계의 대표적인 상징수다.

성균관이나 조선의 궁궐, 그리고 향교와 서원에는 빠짐없이 이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만큼 조선의 선비들은 애틋하게 대우했다.

이유는 이 나무가 지닌 기상이 학자의 모습처럼 자유롭게 뻗은 데다 중국의 주나라 선비의 무덤에 이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가 우리나라에선 또 하나의 나무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고 있다. 느티나무다.

마을 초입의 당산목 중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다. 그래서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 중 가장 많은 것이 느티나무이기도 하다.

식물학자 박상진의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에는 보호수 고목 1만3,500여 그루 중 7,300여 그루, 즉 약 54% 정도가 느티나무이며, 천연기념물과 시도기념물 느티나무도 각각 20여 그루 정도 된다고 적고 있다. 

느티나무는 생육이 빠르다. 마을의 당산목 혹은 정자나무 중 느티나무가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또한 나무의 쓰임새도 만만치 않다. 빨리 자라면서도 나무의 질은 단단하다. 그러니 이 땅 어디에서든 이 나무가 지천인 이유다.

쓸모가 많은데다 빨리 자란다는 것만큼 중요한 나무의 미덕이 또 있을까.

그래서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법보전 기둥, 그리고 대구광역시 현풍면에 있는 도동서원 강당의 기둥은 이 나무를 사용했다.

이와 함께 윤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잘 썩지 않고 벌레도 잘 먹지 않아, 뒤주, 궤짝, 장롱, 밥상 등의 가구재로도, 그리고 악기와 조각재 및 불상 조각에도 사용됐다.

조선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를 배향한 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다. 이 서원의 강원 앞에는 두 그루의 육중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서 있다. 여름엔 큰 그늘을, 가을엔 고운 단풍을, 그리고 겨울에는 속살 그대로 나목을 보여준다.
조선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를 배향한 자운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다. 이 서원의 강원 앞에는 두 그루의 육중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서 있다. 여름엔 큰 그늘을, 가을엔 고운 단풍을, 그리고 겨울에는 속살 그대로 나목을 보여준다.

어디 나무뿐이랴. 느티나무의 이파리는 또 어떠한가. 초파일을 전후해 만들어 먹던 떡 중에 ‘느티떡’이라고 있다.

느티나무의 어린잎을 골라 끝부분에 붙은 검은 것과 억센 줄기는 떼어 내고 이를 멥쌀가루에 섞어 껍질을 벗긴 팥고물과 켜켜이 쌓아 찌어낸 떡이다.

서울 지역에서 자주 불리던 ‘떡타령’에 “사월 초파일 느티떡”이라고 등장할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느티나무가 서원의 중심부에 우뚝 서 있는 곳이 있다. 파주시에 있는 자운서원이다.

이 서원의 강원 앞마당에 둘레가 5m가 넘는 높이 20m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다. 500년이 다 되어가는 노거수는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에는 노랗고 빨간 단풍을 한 아름 선사한다.

그리고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는 나무의 속살을 드러내고 나목으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내뿜는다.

마치 사찰의 대웅전 앞을 채우고 있는 석탑처럼 이 나무 두 그루는 자운서원의 강학당인 ‘강인당’ 앞에서 서원을 지키듯 서 있는 것이다.

자운서원은 율곡 이이가 죽은 후 그를 배향하기 위해 지역의 유지들이 나서 건립을 하고 나중에 사액을 받은 서원이다.

그리고 율곡을 위한 사당이 건립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심어진다. 그래서 나무의 수령인 427년(1982년 기준)이라는 숫자가 보호수 팻말에 정확히 적혀 있다.

그렇다면 유교적 세계관, 그것도 조선의 최고 유학자 중 한 사람인 율곡 이이를 배향한 곳에 느티나무가 서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은행나무나 회화나무가 서 있어도 모자랄 판에 왜 느닷없이 느티나무가 서 있는 것일까. 

앞서 설명했듯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는 회화나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회화나무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과정에 사용한 한자 괴(槐)자가 두 나무에 모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화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느티나무를 회화나무로 받아들여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종의 문화변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리학적 공간인 서원에 회화나무를 대신해서 느티나무가 심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자운서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는 회연서원의 상징수도 느티나무라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는 충청북도 괴산이나 아산의 구괴정도 모두 느티나무를 회화나무처럼 이해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러한 문화변용의 근거가 실용성이라는 점이다.

구하기 힘든 나무에 연연해하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에서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실용성 말이다. 파주시에 있는 자운서원을 들리면 그 실용성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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