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에만 12.4조 규모
거래절벽에 대출자 발동동
연체 시 경매 넘어갈 수도

2022년 10월 31일 17:2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처분조건부 담보대출을 이용한 사람들이 낭패를 보게 됐다. 

예를 들면 이렇다. 대구에 사는 A씨는 올 초 서울로 근무지 변경 발령을 받아 기존 집을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2억원의 대출을 받고 수원 광교에 집을 샀다. 대출을 받은 지 6개월이 되기 전까지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집이 팔리지 않는다. 집을 못 팔면 대출금도 갚을 수 없다. 이 경우 연 20%에 달하는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3개월이 더 지나면 신용불량자도 될 수 있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주요 4개 시중은행의 지난 9월말 기준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 잔액 규모는 12조4050억원에 이른다.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은 1주택자가 투기 규제 지역에서 새로운 주택을 매입할 때 일정 기간 내에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받는 대출을 말한다. 처분 기간은 지난 2018년 2년에서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6개월 내 기존 주택을 매각해야 한다.

매각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은행은 약정 위반으로 대출을 회수하고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을 금지한다. 대출금을 즉시 상환하지 못하면 연 16~21%의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연체 3개월이 넘을 경우 부실차주로 등록돼 금융거래가 제한되고 기존 주택은 경매 등 강제로 처분당할 수 있다.

문제는 가파른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추가 집값 하락 우려 등으로 최근 주택매수 심리가 꺾이면서 부동산 시장이 거래절벽을 넘어 빙하기에 진입했다는 거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전국의 주택 매매량은 총 41만779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만8948건)과 대비 49.0% 감소했다.

9월만 떼어놓고 보면 거래량은 3만2403건으로, 전년 동월(8만1631건) 대비 60.3%가 줄었다. 혹독했던 부동산 침체기로 평가되는 지난 2013년 1월 2만7070건 이후 9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기존 주택 매각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처분조건부 대출 차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하지만 소명 절차나 지점장 등의 재량을 통해 대출 회수 조치를 유예할 방안은 없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처분조건부 대출 관련)상환이나 매각을 독촉하면 ‘집이 팔리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정부에서 가계대출 관리에 역점을 두는 상황에서 소명이나 재량으로 회수 조치를 유예하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 경색에도 금융당국은 처분조건부 대출 차주들이 약정을 제대로 이행하는지에 날카로운 눈초리를 떼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처분조건부 대출 위반 사례가 없는지 집중 점검하겠다”며 “은행권에서도 약정 미이행이 확인되는 경우 해당 대출 회수 등 필요한 조치를 지체 없이 취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이 기존 주택의 처분을 강요하기보단, 주택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 유예기간 연장 등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연간 2만~3만건씩 만기가 도래하는 처분조건부 대출 대부분이 수도권 지역에 집중돼있다”며 “이로 인한 급매물이 수도권 부동산값 추가 하락을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담대 허용 및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여전하고 연 7%를 넘어선 주담대 금리 상황에 부동산 시장 침체기는 계속될 것”이라며 “불가피한 환경에 주택 매각을 이행하지 못한 차주들을 위해 처분 기간을 단 몇 개월이라도 유예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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