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임일섭 금융분석실장

   
▲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임일섭 실장

2012년부터 등장한 한국 경제의 ‘일본화’, 즉 장기불황 또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최근 들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의 장기불황 가능성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12년부터 저성장과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되고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는 모습이 1990년대 이후의 일본 경제와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무엇보다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 과정이 다르고 금융부문의 부실이나 충격 흡수력 등에서 우리 경제가 과거의 일본에 비해 훨씬 양호한 수준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장기불황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의 장기불황 또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또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소비를 비롯한 내수부문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출 증가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저성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저물가 기조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2012년 6월 이후 19개월 연속으로 한국은행의 목표 범위 하단인 2.5%를 하회하고 있으며 2013년 상승률은 전년도의 2.2%보다도 더 낮은 1.3%에 그쳤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8%)을 제외할 경우 소비자물가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2014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전년도에 비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불확실한 국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2014년 전망은 하방 리스크가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장률 등에서 숫자상의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소비 증가를 제약하고 있는 가계부채 등의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체감할 수 있는 내부 회복이 나타나기는 힘들다.

약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부담의 완화를 위해서는 주택가격이 상승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게 되거나 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주택가격의 상승이 가계대출의 증가와 불가분임을 감안할 때 주택가격 상승을 통해 가계부채 부담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또한 주택가격이 안정된 가운데 가계소득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면 가계부채 부담의 완화와 소비의 본격적인 회복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연착륙이 진행되는 상당 기간 동안에는 소비의 의미 있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경제의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 요인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정책대응의 실패이며 최근 일본이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추진 중인 것도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정책이다.

요컨대 디플레이션의 사전적 예방이나 대응을 위해 중요한 것은 통화정책이라는 것이다.

미 연준이 2000년대 초 IT버블의 붕괴 이후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자 1990년대의 일본 사례와 통화정책의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던 것처럼 우리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도 보다 팽창적인 방향으로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