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사업체 “못 살겠다, 물가 상승치 만이라도 올려라”

위탁 보험사들은 공감만, 공감만… 선뜻 나서길 꺼려

<대한금융신문=장승호 기자>“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어떤 애로점에 대해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가장 잘 알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보험업계 내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 같다.

보험사들은 원가 상승분을 반영한 현실적 보험료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경영상 어려움이 크다고 툭하면 국민과 금융당국에 하소연한다. 정작 자신들에게 하소연하는 곳에는 콧방귀만 뀌면서 말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손해사정 업체가 보험사로부터 위탁받은 보험사고(특종, 화재, 해상보험 등) 사정업무를 처리하고 받는 수수료 기준이 10년 전 작성된 후 단 한 번의 조정도 없이 현재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과 파트너십 관계인 손사 업체의 지속적 수수료 현실화 읍소에 대해 “나 몰라라”하며 전형적인 갑(甲)의 파워를 오랜 기간 그대로 과시해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특히 보험사고 금액이 낮은 해상, 화물을 취급하는 손사 업체의 경우 고사위기 직전에 서 있다며 볼멘소리다.

해당 업종 종사자 공히 현 수수료 체계로는 정말 버티기 힘들다며 가격 현실화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해사정 수수료체계 현주소 ‘요지부동’

보험사고 발생 시 보상을 위해 피해 규모를 측정하는 손해사정 업종엔 1종(화재, 특종), 2종(해상, 화물), 3종(자동차), 4종(상해, 질병)이 있다.

물론 업종마다 손해사정 스케일이 다르다.

3종은 손해사정 규모가 크다. 손해사정인이 많고 보험사 소속인 경우가 많다.

1, 2종은 주로 마켓에서 이뤄지는데 둘 다 보험사 소속이 아닌 독립 손해사정이다.

따라서 독립 손해사정 업체가 보험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관련 손해사정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2000년 초반 소폭 조정 후 현재 적용 중인 손해사정 수수료 테이블에 따르면 1종 손사 업무를 대행하고 받는 보수는 손해사정금액이 1000만원 미만의 경우 기본료 66만원에다 교통비가 별도로 지급된다.

10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은 5.06%, 1억원 이상~2억원 미만은 2.20%의 요율 적용 등 금액 구간별로 보수요율이 정해져 있다.

2종도 일정 수준의 현장조사 일당(선박의 선체 기관 등 손상조사 및 손해액 산정의 경우 1인 1일 기준 15만원)과 손해사정 금액에 따라 정해진 보수료를 지급하며 3종 역시 이런 식의 보수요율이 적용된다.

전반적으로 수수료 조정이 안 돼 문제지만 특히 가장 큰 문제는 2종 화물손해다. 이와 관련해 현장조사를 나가면 하루에 15만원 밖에 못 받는다. 업체 대표이사가 나가든, 말단 직원이 나가든 건당 기본요율 40만원에다 하루 15만원 일당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건당 기본요금을 포함해 첫날 55만원, 이틀째부터는 15만원만 추가된다. 즉 한 건에 대해 20일 일한다고 치면 340만원 밖에 안 되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선박 사고조사의 경우도 수수료 스케일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일당은 15만원이다.

문제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면 손해사정 보수표도 변할 법한데 2003년 이후 똑같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힘의 논리에서 앞선 손해보험사 집단이기주의 벽이 워낙 두터워서다.

손사 업계는 그동안 인건비,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해 수수료 상향 조정을 요구해 왔으나 매번 돌아오는 건 우이독경 꼴의 결과뿐이었다.

“수수료율이 그대로라도 물가 상승으로 손해사정금액이 커졌으니 받는 보수 또한 많아졌다. 자동으로 요율 상승분이 반영된 것이니 요율을 안 올려줘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뻔뻔한 보험사의 논리에 번번이 좌절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수차례 노크, 집단이기주의 벽에 막혀

이같은 보수테이블은 손사 업계가 안을 올리면 손해보험협회가 주관이 돼 각 보험사 실무자를 소집해 타협하고 합의가 되면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거쳐 적용한다. 하지만 자율화 추세의 요즘은 백날 손사 업계가 보수료 조정안을 만들어봐야 보험사에서 조정 자체를 거부하기 일쑤다.

손사업체 한 관계자는 “조정안을 가지고 코리안리, 손보협회도 찾아가봤는데 아무도 자율경쟁에 위배된다며 선뜻 나서주지 않고 있다. 손보사 실무자 대부분은 손해사정 수수료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개선은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 보수테이블에 매년 불만은 있었지만 일감을 받아와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어쩔 수없이 버텨왔는데 요즘은 한계를 느낀다”며 “단순 생활물가지수를 반영하면 2003년 4% 등 2012년까지 각 해별 합산 인상율은 36%가 된다. 더도 말고 최소한의 물가 상승분이라도 반영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요즘 보험사는 1년 단위의 손해사정 아웃소싱 계약을 주로 한다.

몇몇 손사 업체는 은근히 기대를 갖고 상향 조정한 보수율을 들이밀어 보지만 백퍼센트 거절당한다. 해외출장 손사 업무는 그동안 쌍방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했는데 되레 깎였다고 한다. 보험사가 아예 내부 방침(일당 약 60만원)을 정해 계약서를 내미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험업계 아성은 여전하나 상황이 딱한 2종에 한해 일부 여력 있는 곳은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삼성화재의 경우 전에 없었던 할증료 즉, 야간작업, 휴일할증 등을 손봐서 올려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손사 업체 관계자는 “이 추세로 간다면 10년이나 20년 뒤에도 보험사가 선뜻 알아서 올려줄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해상분야 손해사정 하는 곳이 14군 데지만 무작정 보이콧으로 밀고 갈 수도 없다. 이유인즉 당장 일감이 없으면 배고프고 마켓 대표(독립 손해사정 대표이사)들이 보험사와 갑을 관계를 너무 잘 알아서 말처럼 단합도 쉽지 않다”며 현 상황을 난공불락에 비유했다.

◆화물, 선박 취급 2종 업체 죽을상

답답한 10년 묵은 수수료체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손사 업체 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존재한다.

특히 2종 전문 손사업체는 현 수수료 구조상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아 급여문제 등으로 직원들의 타 업종 이직이 잦을 뿐만 아니라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다 보니 2종 전문 손사업체는 대표이사가 직접 주축이 돼 현장을 뛰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그나마 수수료 체계가 괜찮은 1종(화재) 대표들은 주로 관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손사 업체 C모 대표는 “규모의 경제 때문에 2종은 사장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2종 전문 업체의 어려움이 큰 가운데 이들의 취급종목 중 선박의 경우 손해액별 요율표가 있어 조금 나은 편이다. 선박 보험사고 발생빈도는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손해액이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대에 이르다보니 나름 수입이 짭짤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업체에게 기반이 되는 화물은 손해액이 1억원 짜리든 10억원 짜리든, 일이 어려우나 쉬우나 보수가 제한적이어서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직원 한 명이 소화해낼 수 있는 화물조사 보고서는 한 달에 잘해야 10건 정도다. 한 건당 보수료 70~80만원을 감안하면 한 달 벌이가 700~800만원 밖에 안 되는 꼴이다.

선박 사고보다 수출입 화물에 대한 클레임이 훨씬 많지만 이러한 수입구조 때문에 화물만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짭짤한 외국사 물건만 받고 싶다

이따금 2종 전문 국내 손사 업체가 외국 보험사로부터 직접 업무의뢰를 받을 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쾌재를 부른다.

국내에 없는 중국 인민보험공사(PICC)나 기타 나라로부터 의뢰 받는 것은 그 나라에 형성돼 있는 시장가격을 감안해 청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조사 수수료(Survey fee)가 우리나라보다 낫다.

영국, 중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외국의 경우 한국처럼 정해진 손해사정 요율표가 없다. 손해액이 얼마든지 간에 시간 또는 데일리 개념으로 수수료를 지급한다.

화물 및 선박보험 사고조사에 대한 국내 손해사정 수수료는 1일 15만원이지만 외국은 통상 시간당 100~150달러, 하루당 500~800달러에 이른다.

손사업체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 업무의뢰가 들어오면 사안에 따라 하루에 최저 500~600달러를 받는다. 선주들이 각자 돈을 내서 운영하는 세계 유수 P&I(Protection and indemnity insurance; 선주상호보험)클럽으로부터 종종 일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같은 수준의 피를 적용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국사처럼 가격 현실성이 맞을 때 손해사정 업체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상당수 국내 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외국 P&I와 연계해 일을 많이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손사업체 중 협성손해사정, 스파크손해사정, 할리손해사정 등은 외국 P&I채널과 연계된 일이 많다. 협성손사는 영국 로이드의 한국 에이전트로 지정돼 있다.

거꾸로 해외 보험사고로 인해 국내 보험사가 해외 손사업체에 조사업무를 의뢰하는 경우 당연히 국내 테이블을 적용하지 않는다. 시간당, 일당 개념으로 해외 손사업체가 달라는 대로 지급한다.

유독 한국 로컬 손해사정에만 갑의 위치에서 계약서상 금액이 좀 높으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다. 무한 자율 경쟁시대에 공통 보수테이블을 적용하는 곳은 우리나라 외엔 거의 없다. 그것도 10년 전 작성된 것을 두고 말이다.

◆전문 인력이 곧 서비스 질, 상생전략 긴요

보험사는 갈수록 계약 손사 업체에 질 높은 서비스 요구는 물론 잔 업무도 떠넘기고 있다.

관련업 관계자는 “종전에는 보험사에 보고서만 작성해 주면 됐는데 요즘은 별도의 비용 없이 요약본에 관련 정보까지 제공해 달라는 등 사소한 업무들이 많이 늘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수준 높은 서비스는 전문 인력 양성 및 유지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빠듯한 살림살이가 이어지다보니 손사 업체들은 전문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2종 손사의 경우 신입부터 믿고 맡길만한 중간 관리자까지 키우는데 최소 5년 걸린다. 수입구조상 급여 부분이 약하다 보니 신규 인력을 채용해도 얼마 되지 않아 나갈 뿐만 아니라 고급 인력 스카우트는 아예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S손사 관계자는 “손사 업체 직원들은 외국어는 기본이고 보험, 해운, 화재, 화물 등 관련 산업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직장 내 교육훈련(OJT) 등 직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수입구조상 어렵다. 이런 데다 일은 힘들고 급여가 낮아 인력 이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점점 기피 업종이 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2종 손사 업계가 직면한 문제를 요약하면 △선박승선 경험과 해상보험의 전문성을 겸비한 인적 구성의 어려움 △잦은 오버타임과 주말, 휴일 근무로 지원자 격감 △유능한 인력 채용 어려움 △신입 직원 등의 타 업종 이직 가속화 △회사 구성원의 역삼각형 구조 심화 등이다.

모두 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거래 수수료 측면에서 최소한의 상생 조치가 없을 경우 손사 업체의 인력 이탈 가속화로 인한 전문성 약화는 물론 문 닫는 업체도 늘어날 수 있다. 손사 업체 추락이 보험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대로 가다간 종국엔 손사 업계, 보험 업계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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