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함께 의논하자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개혁의 주체는 금융회사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권 준법감시인들과의 만남에서 금융개혁의 주체는 금융회사라고 말했다. 그리고 금융개혁을 위해서는 금융회사 스스로 나서서 3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첫째가 금융회사가 느끼는 애로와 규제개혁 방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둘째는 금융회사 스스로 경쟁하려는 준비와 자세를 갖춰야 하고, 셋째는 규제 개혁 효과를 지속시키려면 금융회사 ‘내부통제’를 철저히 하여 금융사고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의 고장난 바퀴를 교체하는 것만큼 위험하고 힘든 일이 개혁이라고 한다. 기차는 계속 달려야 하고 망가진 부품은 바꿔야 하는 상황. 말 그대로 아찔한 상황이다. 그런데 개혁의 본연의 의미로 돌아와 이야기하면 가장 평범한 일이 개혁이기도 하다. 우선 제도가 가진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내부자들은 원칙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문제점이 있다면 적극 개진해 수정하면 되는 것이다.

뉘앙스가 매우 다른 개혁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이다. 임 위원장은 평범한 워딩으로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은행의 준법감시인들이 주어진 역할을 다해주면 제도 본연의 역할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방이 항우와의 전쟁에서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람들 덕이라고 한다. 특히 고향 땅에서부터 줄곧 같이 생활한 소하가 병참과 행정처리 등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책임져 준 덕을 크게 보았다. 큰 전투마다 유방은 항우에게 패전했지만, 그 때마다 재기할 수 있도록 자원을 모아주었고 흔들림 없는 내치를 유지해주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임 위원장은 준법감시인이 소하처럼 자신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은행 구성원들이 모두 제 역할을 다한다고 해도 문제는 발생하는 법. 오히려 현재의 위기요인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담아낼 법적·제도적 도구가 부족하다는데 있다. 이 같은 점에서 오히려 준법감시인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핀테크, 인터넷전용은행 등 신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개혁의 방향은 신기술의 적용과 관련된 영역에서 주로 이뤄져야한다. 그래서 현재 금융위원회의 결정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세종 리더십 내세운 NH금융지주 김용환 회장
“세종대왕이 즉위하자마자 처음 한 말이 ‘함께 의논하자’였다”,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할 다양한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고, 현장 경영을 정례화해 임직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

새로 NH농협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선임된 김용환 회장이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세종이 즉위하자마자 인사문제를 두고 정승과 판서 등 당시 중앙정치의 핵심들과 의논하겠다고 말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세종실록》에 나온 원문을 먼저 살펴보자.

“임금이 하연(河演)에게 이르기를,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하니, 하연이 아뢰기를, “상왕께서 일찍이 경덕궁(景德宮)에서 정승 조준(趙浚) 등과 상서사 제조(尙瑞司提調)와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시었사온데, 이제 전하께서 처음으로 정치를 행하심에 있어, 대신과 함께 의논하옵심은 매우 마땅하옵니다”하였다”

하연은 세종 즉위 당시 도승지(현재의 비서실장)였다. 세종은 도승지에게 인사문제를 당상관들과 논의하겠다고 말하니, 전례를 들어 도승지도 거들고 나선 대목이다.

왕조국가는 물론 근대 국가에서 통치권자의 핵심 권력은 ‘인사’다. 인사가 리더의 권위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훼손시키기도 한다. 선왕 태종과 달리 왕도정치의 리더십을 꿈꾼 세종은 권력의 근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핵심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세자시절부터 애독했고, 통치기간 내내 신하들과의 경연에서 가장 많이 읽고 토론한 책이 《대학연의》라는 책이다. 《대학》과 《서경》에 나온 내용을 중국 송나라때의 선비 진덕수가 풀어쓴 제왕학의 교과서이다.

인사와 관련해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자.

“무릇 사람을 쓰는 일이란 정사를 바로 세우는 데 근본이 되며, 또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사람을 쓰는 데 근본이 됩니다. 모름지기 정사가 제대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엉망이 되는가는 사람을 쓰는데 성공했는가 아니면 실패했는가에 달려있으니 임금이 된 자로서 누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마는 사람을 쓰고 버리는 사이에 있어서 원래 주려던 자리가 바뀌지 않는 일은 지극히 드뭅니다. 그만큼 마음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어 옳고 그름, 그릇되고 바름 등이 뭔가에 순간적인 홀림의 여부로 인해 정해집니다”

지금 읽어도 탁견인 이 말을 세종은 수없이 되뇌였을 것이다. 물론 김용환 회장은 인사문제를 거론하기 위해 의논하자고 말한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조직을 추스르겠다는 취지로 말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같은 발상은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는 ‘집단사고’의 문제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장점을 가진다. 보스가 원하는 답만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여 해법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집단사로를 피하는 첩경이다.

다만 한 가지. 《한비자》에 나온 이 이야기만 조심하면 말이다.

“군주가 어떤 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작은 일이라도 군주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감추고, 군주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능력이 없어도 있는 척 꾸미며, 군주가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면 신하들은 자신을 꾸밀 기회를 얻는다.”

금융지주회사 간의 경쟁이 열국지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든 은행들이 핀테크를 중심으로 한 모바일플랫폼 혁명을 예고하고 있고 국내 영업환경의 악화를 이유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산규모에 대한 경쟁도 점입가경의 수준이다.

세종의 리더십이 발휘될 대목은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용환 회장의 “경청”은 의미있는 단어다. 《한비자》의 조언과 세종이 가죽 끈이 헐어 수 십번 매듭을 묶은 《대학연의》 글귀를 담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면 김주하 NH농협은행장이 만들고자 하는 수리답(水利畓)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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