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1>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현재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이신가요?” “혹시 자신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았을 때는 없었나요?”

위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전화번호 개수와 기억여부를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보화는 우리의 기억을 기계에 아웃소싱시켰다. 인간들이 적극적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컴퓨터와 휴대폰은 일자 일획도 틀리지 않고 확실하게 정보를 저장해주고 재생시켜준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디지털 데이터는 약 8제타바이트(zettabyte) 정도라고 한다. ‘메가’와 ‘기가’의 단위는 들어봤어도 ‘제타’라는 단위는 익숙하지 않다. 1제타바이트는 1000엑사바이트, 1엑사바이트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보유한 인쇄물의 10만배에 해당하는 정보량이다. 즉 8억개의 미 의회도서관이 보관하는 정보의 양이라고 지구 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생활방식마저 컴퓨터와 휴대폰 등 IT기기 중심이다 보니,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고 있다. 더 이상 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불편함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구글은 지구상의 모든 책을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현재 3000만권 정도의 책이 디지털화 되었다고 한다.

수 천년 동안 인간의 입으로 구전되거나 책으로 대물림 되어 온 고전도 검색으로 찾을 수 있으며, 각종 다이제스트를 통해 고전이 말하고자하는 바까지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왜 인문학이며 고전인가? 인터넷을 통해 모두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얻어낼 수 있는 검색만능시대를 살면서 굳이 ‘고전’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전’의 어원부터 되새김해 보자. 누구나 읽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정의되곤 하는 고전의 영어식 표현은 ‘클래식(Classic)’이다. 그 밖의 유럽의 언어도 대부분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만 다를 뿐 모두 ‘클래식’으로 발음된다고 한다.

이 클래식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 이 단어는 함대를 뜻하는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라고 한다. 여러 척의 군함을 함대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함대라는 단어에서 클래식이 도출되었을까?

로마시대에는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면 부호들이 여러 척의 군함을 기부했다고 한다. 징세제도가 있었지만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군함만큼은 기부를 받아서 건조한 것이다. ‘클라시쿠스’는 이렇게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한 부자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위기는 국가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럴 때 정신적으로 지탱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나 작품을 클래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해법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소설네트워크서비스)에서 답을 구하지도 않을 것이며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을 보면서 위기를 타개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와 지식이 인터넷에 쌓여있지만, 위기의 순간 외부에 위탁 관리되고 있는 우리의 기억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느껴지는 그 순간, 함대를 쾌척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로마의 부호들처럼 정신의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동안 읽었던 책이나 작품, 특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과 지식은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숙성되고, 기억의 저장고에 쌓이게 된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진가를 발휘한다. 깊은 생각, 즉 성찰을 통해서 말이다.

성찰은 결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신호음에서 찾아지거나 아이팟이나 유튜브의 동영상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생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단절 없는 깊은 생각은 펀더멘털이 강한 정신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고전은 바로 정신의 펀더멘탈을 강화시키는 양식인 것이다.

누구나 위기를 겪지만 그 위기의 출구를 찾는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지는 정신의 크기 내지 정신의 힘에 좌우된다. 그래서 고전에 답이 있는 것이다.

먼저 산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고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사례 등을 살피면서 자신의 위기를 대비해보고 유사한 방법으로, 또는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고전의 힘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기억을 아웃소싱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과 성찰만큼은 아웃소싱할 수 없는 대상이다. 남이 해주는 생각이나 성찰 내지는 기계가 대신하는 생각이나 성찰이 가능하겠는가?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문명사적 전환기에 필요한 직관과 통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전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고 고전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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