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의 ‘생각’… 금융의 중국 진출

뉴노멀 지역서 새 기준 창출 후 국내 적용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사가 부쩍 늘었다.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지 1년이 넘은데다 의식까지 없는 상황이어서 포스트 이건희 체제에 대한 언론의 궁금함이 한층 달아오른 듯하다. 더욱이 그룹사 전체 차원의 전략적 방향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해당 산업의 지각변동도 가능한 몸집이다 보니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궁금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금융지주회사 논란은 금융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뜨거운 논란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유는 삼성의 금융사들이 금융업계의 삼성전자가 되어 역할을 한다면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 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생각에 업계 관계자들의 레이더가 맞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까지 나온 이야기를 종합하면 중국을 대상으로 한 금융업 진출과 ‘삼성페이’로 무장한 인터넷 기반의 금융서비스 정도.

이와 함께 상황논리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은 이재용 부회장이 스스로의 리더십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기왕의 슈퍼파워가 되어 있는 삼성전자 이외의 영역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 그래서 금융계열사 중심의 반전 드라마, 즉 이재용 리더십의 긍정적 역할 및 기여 포인트가 필요하고 큰 그림을 위한 큰 생각이 집중 논의될 것이다.

생각이란
생각을 표현하는 한자 중 자주 사용한 글자는 사(思), 상(想), 념(念), 려(慮) 정도이다.

‘생각할 사(思)’자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래서 곰곰이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생각할 상(想)’자는 ‘마음으로 상상해서 생각한다’는 뜻으로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생각할 념(念)’자는 ‘지금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그래서 ‘맴돌며 떠나지 않는 생각’을 뜻하고 ‘생각 려(慮)’자는 ‘범의 무늬처럼 아름답게 만들도록 도모한다’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이처럼 생각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양하듯이 생각 또한 다양하다. 이 생각 중에 멀리 바라보는 생각은 ‘생각 려(慮)’자에 해당한다. 천자문에는 ‘산려소요(散慮逍遙)’ 구절 속에 ‘생각 려’자가 등장한다.

“근심을 버리고 유유히 거닐며 만족해한다”는 뜻의 이 구절에서 생각은 ‘범의 무늬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큰 그림’같은 생각을 의미한다.

그 의미의 확장이《논어》에 나오는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즉 “사람에게 훗날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이 한다”는 말이다. 가까운 근심을 멀리하기 위해서 ‘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생각’을 다져 나가면 작은 걱정거리들은 자연스레 예방되어 자리할 수 없다는 의미다.

큰 생각한 코시모 데 메디치
멀고 장구한 생각을 한 르네상스의 대표적 기업가가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바로 그다. 서로 다른 아이디어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고 부를 만큼 메디치 가문은 ‘생각’과 인연이 깊다. 그 가문의 인물 중에서도 탁월함이 으뜸인 자다.

정적에 의해 피렌체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우호적인 베네치아에서 망명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된 뒤 조국 피렌체로 돌아와서 그가 행한 첫 번째 큰 결정은 망명생활을 했던 베네치아와 멀어지고 외려 그를 망명지로 몰아세웠던 밀라노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외교적 선택이었다. 이유는 이탈리아의 평화를 위해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냉철했으며 또 현명하기까지 한 판단이었다.

이후 코시모는 기존의 질서와 사고체계로는 더 이상의 개선이나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또 다시 피렌체로부터 메디치 가문 전체가 쫓겨나는 일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그는 ‘생각’의 영역에 일대 변혁을 준비한다.

우선 교착에 빠진 동서교회의 공의회를 피렌체에 유치해 외래 사상을 접목시킨다. 동로마 교회의 사제들과 함께 플라톤 철학이 피렌체에 넘실거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마 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콘스탄티노플의 플라톤 철학이 다시 만나게 됐으며 그 결과, 찬란한 피렌체 르네상스가 꽃피우게 된다.

이처럼 코시모는 ‘동질적인 것에 희망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혁신을 준비한 것이다. 그렇게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한 은행가 집안에서 제1시민의 권력자가 되어 30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끊임없는 혁신과 ‘큰 생각의 문화’가 뒤를 받쳐 준 결과이다.

뉴노멀의 중국, 그리고 삼성의 행보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최근 미국의 은행들은 제로 금리에서도 3% 포인트 수준의 예대마진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낮아진다고 해서 은행들이 꼭 예대마진을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이런 영업 환경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해외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안심전환대출 같은 정부의 간섭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치권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금융권. 말 그대로 오랜 관행이다. 그러니 은행연합회장이 나서서 기자들에게 은행권을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이 또한 자주 있는 일이다.

언제까지 ‘오랜 관행’만 이야기할 것인가? 이런 조건에서 큰 생각은 가능한 것일까?

이재용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의 금융계열사는 다른 출발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기존의 질서와 규칙에선 더 이상 유연성을 찾을 수 없는 금융환경. 이건 변화의 출발지로는 부적합하다. 천하의 삼성전자로도 이 조건에서 승부를 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뉴노멀의 창조지역, 중국을 볼 수밖에 없다. 시장의 규모는 말할 것 없고, 새롭게 기준이 만들어지는 지역이다. 정치적 관행은 존재하지만 새로운 산업에 대한 규칙과 기준은 만들면서 준비되는 나라다.

그래서 중국 최대의 투자회사와 협력을 맺는 것이고, 삼성의 금융계열사에게는 ‘자산운용능력을 키우라’라고 주문한 것이다.

중국에서 먼저 ‘큰 생각’을 적용시켜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게 되면, 국내 적용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안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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