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21:25 (일)
[칼럼]시대와 함께 읽는 삶의 나침반 ‘고전’
[칼럼]시대와 함께 읽는 삶의 나침반 ‘고전’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5.05.17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전이란<3>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이 그의 책 《강의》에서 한 말이다. 우리가 고전이라고 일컫는 책들은 모두 오랜 기간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작품들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인신공격이나 상처주기에 급급한 잔인한 댓글들을 물리치고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인 것이다.

그런 만큼 그 작품들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하고 나와 타자를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고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고 나와 타자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가? 시대마다 각각의 특징이 다르고 사는 사람들의 생각마저 다른데, 그리고 나와 타자의 생각과 삶의 특징도 큰 차이를 가지는데, 어떻게 고전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가?

◆고전은 시대정신의 반영
고전은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고 평가도 다르게 내려진다. 시대정신이 무엇이냐에 따라 읽히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플라톤 철학은 중세의 암흑기를 거치는 기간 동안 서방 교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철학이었다. 플라톤 당대는 물론 현재도 존경받는 철학자지만 중세 교회에서는 배제된 것이다. 그의 저작이 다시 서방 교회에 나타난 시점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속에 1439년 열린 피렌체 공의회 때이다.

당시 피렌체를 방문한 비잔틴 교회의 사제들 손에 들려 온 책이 바로 플라톤의 저작들. 그리고 이 책들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 등 피렌체 출신 예술가들에게 스며들었으며 결국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수분이 되어주었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끼친 영향의 폭과 깊이가 크고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 칼 포퍼는 플라톤을 닫힌 사회의 주역이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이처럼 고전은 읽히는 시대의 시대정신과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환영받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15세기 피렌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이데아에 대한 열망이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풀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이데아는 담아낼 그릇 조차 없었던 것이다. 즉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강대국 사이에서 이탈리아 반도는 사분오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지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런 시각으로는 외교는 물론 당시 경제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고, 메디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플라톤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 전체주의에 각을 세우던 칼 포퍼는 그의 철학이 이후 등장하는 헤겔 및 마르크스 등의 철학과 함께 닫힌 사회를 지향한다면 비판하고 나선다.

(스피노자에 대한 철학적 평가 또한 시대마다 다르고 바라보는 시선마다 차이가 난다.

그는 “성서 속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 공동체와 기독교계 모두로부터 추방당한다. 당시 그의 책은 “사악한 문서”였으며 “지옥에서 꾸며진 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중세인이며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개인’을 발견한 근대철학의 시조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래서 헤겔은 “그의 철학은 생기가 없고 굳어 있지만,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피노자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중세라는 닫힌 공간에서 근대라는 열린 공간으로 이행하는 주체는 ‘개인’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교회의 눈으로 그를 보면 ‘악마’와 같은 존재였지만 근대국가와 근대정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시조’가 되는 셈이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싶은 현대인
공자의 말 중에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도 유명한 이 말은, 공자 전문가인 이기동 교수의 말로 풀면 “고전을 읽는 목적은 오늘 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년 이상, 때로는 2000년 이상을 견뎌 오면서 지금도 읽히는 책들은 그 시절 내내 당대의 문제를 푸는 연결고리가 되어 준 것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청소년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타고난 용기’보다 ‘훈련된 용기’라는 공적 의미의 용기를 가르치는 교본이기도 하였으며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바다만이 살길이었던 그리스의 청춘들에게 모험정신을 심어주었고, 인생은 온갖 유혹과 고난의 연속이라는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전은 수천년 동안 당대의 사람들에게 지혜를 건네주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피렌체의 생존 전략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생존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처지와 유사해 지금도 읽히는 책이 된 것이다. 또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이아스는 능력도 있고 최선을 다하지만 승진은 제대로 못하는 우리 셀러리맨들의 모습과 똑같다. 자기를 스스로 착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피로사회》. 현재의 우리들 모습은 2000년 전에도 수백년 전에도 다 존재했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어디서 우리가 출발했고, 어디를 거쳐 가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책장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고전들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